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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금 신한은행 본부장>



<편집자주: 유리천장. 일을 잘하고 똑똑해도 사회에서 여성이 높은 지위에 오르기까지 뚫어야 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일컫는 말이다. 금융시장에 종사하는 여성들도 유리천장을 피할 수는 없었다. 금융시장도 4대 은행에 여성임원이 없을 만큼 두껍기로 소문난 유리천장이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유리천장을 깨고 상위 1%로 우뚝 선여성 금융인들을 만나봤다. 신입사원 시절 조그만 실수에도 주눅이 들고 남몰래 울기도 했던 여직원이 실력파 임원이 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을까. 유리천장 아래서 연약한 꽃으로 남기보다 이를 뚫고 큰 나무가 되는 쪽을 택한 베테랑 여성 금융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선영 기자 = "좋았다기보다 싫지 않았다는 편이 맞겠죠"

1976년 입행했으니 은행 이야기는 지금은 사라진 조흥은행, 상업은행, 제일은행, 한일은행, 서울은행이 있던 이른바 `조상제한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은행원이라면 기본적으로 주판과 부채형으로 돈 세기의 달인이 되던 때였다.

한순금 신한은행 북부영업본부장이 고등학교 졸업 직후 입행해 35년간 근무하면서 가장 큰 힘이 된 것은 긍정적이고 밝은 성품이었다. 오래돼서 잘 기억도 안난다며 웃음 짓는 한순금 본부장.

"진심을 다하는 게 최고지. 진심이 통해야 실적도 나오니까"

은행 업무에 대해 묻자 나긋나긋한 경상도 억양의 답변이 돌아온다. 은행원 이력의 90% 이상을 부산에서 보내고 상경한 지 1년 째다.

▲ 남편 외조는 가장 큰 밑거름 = 한 본부장은 부산에서 줄곧 은행생활을 해왔다. 지난해 초 서울로 발령을 받으면서 주말부부가 됐다. 가족 이야기가 나오자 한 본부장이 "맞다. 1998년 IMF때 말이죠"라며 말문을 열었다.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은행권에 근무하는 부부 은행원들은 감원 1순위였다고 한다. 너도나도 구조조정의 칼바람에 떨어야 하는 형편이었던 만큼 부부라면 한 사람은 나가야 했다.

당시 남편은 "한순금씨가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은행일을 더 잘할 것 같아요"라고 한 본부장의 손을 들어줬다. 학계로 나가고 싶어했던 남편이 사표를 내고 아내인 한 본부장이 은행에 남았다.

"은행을 계속 다녀야 할지 제일 고민했던 그 때 남편이 인정해 줘서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한 본부장은 회상했다. 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남편 대신 은행에 남았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후 예금 권유만 하던 은행들이 파생상품 등 금융투자상품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한 본부장은 시대 흐름이 바뀌고 있다고 느꼈다.

파생상품 관련 행내 교육도 부산에서 3명 지원했는데 적극 참여해 고객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제안하는 일을 맡으면서 실적을 쌓기 시작했다.

그는 "섬세하고 꼼꼼하게 배려하는 성격과 상당히 잘 맞았다"라며 "큰 줄기를 보고 일한 것이 큰 성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우린 주차장이 좋아요" = 한 본부장은 지난 2002년 4급 지점장 응모에 지원해서 발탁되면서 첫 지점장을 달았다.

그러나 처음 지점장으로 부임했던 부산 구포지점은 직책만 점포장이었지 실적이 좋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창구로 복귀해야 하는 자리였다.

"나 혼자 할 수는 없는 일이었어요. 직원들과 밤낮없이 같이 일하고 밥먹고 하면서 우리 지점만의 강점과 약점을 분석했죠"

그렇게 첫 시험대를 거쳐 2006년 부산 신평지점장을 맡게 된 한 본부장. 허허벌판에 은행 지점 하나만 있는 곳이었다. 가진 거라곤 드넓은 주차장뿐이었다.

"그 넓은 주차장을 우리 지점의 장점으로 삼기로 했어요. 차로 오기 편하다고 강조했죠"

내점 고객도 별로 없었으나 주변의 개인 사업자들을 상대로 열심히 주차하기 편하다고 지점 홍보를 시작했다. 종업원들 통장도 유치하고 개인 사업자들에겐 대출 도 권유하며 자금 수요를 해결해주기 시작하자 입소문은 금방 났다. 외딴곳에 자리잡은 넓기만 한 지점이라는 단점이 장점이 된 셈이다. 대출 수신 1등을 기록했다.

한 본부장은 "기회가 올 때 잡는 것도 실력이라고 생각해요. 실력이 없으면 기회가 와도 기회인 줄 모르니까"라고 덧붙인다.

▲고객을 움직이는 0.1% = 한 본부장은 은행생활에서 고객을 대하면서 진심은 통한다는 것을 여러 번 깨달았다고 한다.

진솔한 태도와 꼭 모시고 싶다는 마음을 전하는 것이 고객 응대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러 은행과 거래하는 고액 자산가들은 금리 조건이나 여러 혜택을 비교해 보는 만큼 섬세함이 필요하다.

한 본부장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금리가 다른 은행보다 조금 좋지 않더라도 다른 우대 혜택으로 보완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고객이 혼자 사는 노인일 경우 차로 병원가는 길에 모셔다 주기도 하고, 가족이 없으신 분은 요양원을 알아봐 주는 등 고객 감동은 그의 실적 비결이기도 하다.

"고객은 0.1% 금리 차이를 따지지만 단지 그것 때문에 움직이진 않아요"

고객의 감성을 톡톡 건드리는 다정한 말투에 단단한 원칙이 묻어난다.

▲과거를 묻지 말 것 = 직원을 대할 때도 공정하고 공평해야 한다고 한 본부장은 강조했다.

"과거 점포일을 묻지 않는다가 첫번째 원칙이에요. 직전 점포에서 잘한 건 과대포장되기 일쑤고 실수한 건 선입견을 남기죠"

그는 젊은 직원들이 한 점포에서의 실수로 위축되는 것은 은행 입장에서도 손실이라고 한다.

"과거는 참고만 하되 현재 변화돼 있거나 좋아질 수 있다면 그 사람의 가능성도 봐줘야 해요. 우상향 곡선을 그릴 잠재력이 있는지, 변하려고 노력하는 직원이 소외되지 않도록 해야죠"

언니처럼, 엄마처럼, 누나처럼 둥글둥글하게 감싸주는 감성 리더십을 그는 강조한다.

▲당신은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인가 = 일은 즐겁게 하는 것이라는 한 본부장. 그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많은 사람과 같이 일하고 싶지 않아요?"라며 동료에게 그런 사람이 되라고 조언한다.

누구든 공주병 여직원과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는 뜻이다.

한 본부장은 "나는 직원들과 실패한 이야기도 하고 한 번 다른 것도 해보자고 해요. 지점장이라도 모든 일이 한 번 만에 오케이 되지는 않으니까"라며 웃는다.

상사도 어려울 때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면 어느새 직원들도 똘똘 뭉쳐서 포기하지 않게 된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잭 웰치 전 제네럴일렉트릭(GE) 회장 부인인 수지 웰치 여사의 말이 인상깊다고 한다. 여성들은 아이 핑계를 대지 마라. 그때부터 직장에서 소외된다.

한 본부장은 "경쟁도 하기 전에 나는 여자라는 한계를 인정하고 가면 그 벽을 깰 수 없어요"라며 팀원으로서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라고 조언했다.

"차별 대우를 생각하기 전에 성공하려면 성별부터 잊어야 해요"라고 조용히 덧붙인다.

한순금 본부장은 1976년 조흥은행 부산지점으로 입행해 구포지점장, 동래중앙지점장, 신평지점장 등을 거쳐 현재 신한은행 북부영업본부장을 맡고 있다.

syj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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