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김희진 씨티은행 본부장



<편집자주: 유리천장. 일을 잘하고 똑똑해도 사회에서 여성이 높은 지위에 오르기까지 뚫어야 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일컫는 말이다. 금융시장에 종사하는 여성들도 유리천장을 피할 수는 없었다. 금융시장도 4대 은행에 여성임원이 없을 만큼 두껍기로 소문난 유리천장이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유리천장을 깨고 상위 1%로 우뚝 선 여성 금융인들을 만나봤다. 신입사원 시절 조그만 실수에도 주눅이 들고 남몰래 울기도 했던 여직원이 실력파 임원이 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을까. 유리천장 아래서 연약한 꽃으로 남기보다 이를 뚫고 큰 나무가 되는 쪽을 택한 베테랑 여성 금융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선영 기자 = "20년 가까이 증권관리 업무를 한 셈이죠"

예금, 대출 뿐 아니라 다양한 업무가 집결된 은행에서 한 부서에서 장기간 집중적으로 근무한 이력이 눈에 띈다.

1998년 IMF 외환위기 때 만삭이었다며 웃음짓는 김희진 씨티은행 본부장을 만났다. 동안인 외모 때문인지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친근하게 느껴진다.

"금융위기와 유럽 채무 위기에 자산가치는 절반으로 뚝 떨어졌으나 외국 고객 이 줄어든 건 아니에요. 오히려 외환위기를 겪은 적이 있는 아시아로서는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최근에는 해외에서 근무하는 씨티 직원이 구글 번역기로 메일 끝에 '감사합니다'라고 써주기도 한다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말한다.

씨티은행에서 22년째 근무하고 있는 김 본부장의 은행 이야기는 어떨까.

▲`노하우`는 안된다 = 김 본부장이 은행에 입행한 후 처음 맡은 일은 거래처 서명,인감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매일 매일 각종 인감과 법인 도장 등을 꼼꼼히 확인해서 넘겨주는 일은 꽤 단조로웠다.

"은행생활을 21년 넘게 하고 나니까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게 됐죠. 그 때는 몰랐어요"

김 본부장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특히 대형 종합 상사들은 부서별 도장도 따로 있어 하나하나 일일이 확인해야 하니 사실상 단순 업무였다. 그러나 자칫 실수를 하게 되면 수십억원의 금액이 날아가는 일인 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사고가 나도 거기서 나니까 하며 김 본부장은 말을 이어나갔다.

"노하우가 있으면 사고가 날 수도 있죠. 기업 도장이 최근에 바뀌었을 수도 있고 바로 전날 새로 등록하기도 하니까 기억에 의존하면 안돼요"

기억하고 있더라도 재차 확인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과거의 어떤 회사 도장을 기억한다고 해서 최근에 바뀐 걸 모르고 그냥 확인해준다면 대형 사고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는 "은행 업무가 대부분 그래요. 단순반복 같아도 매번 신중하게 확인해야 해요"라고 그는 덧붙인다.

▲이직을 못한 이유 = 김 본부장은 입행 후 20년 가까이 증권관리부에서 주로 업무를 해왔다. 1993년부터 초창기 멤버로 합류한 후 전문가로 자리를 굳힌 것이다.

"예전에는 주권을 다 실물로 줬어요. 지금은 전산화가 돼 있지만 그 때는 주식을 사면 주권을 산 만큼 발행했죠"

그는 1992년 자본시장 개방으로 외국인의 국내 주식 투자가 자유로워졌던 시기부터 줄곧 증권관리 업무를 했다. 증권 수도 업무, 환전, 예금 계좌에 보관, 권리행사 등 백오피스 업무만 7년 정도 했을 무렵. 이직 기회가 찾아왔다.

자리를 옮겨봐야지 생각하던 차에 외국인 부서장이 불렀다. "당신이 하고싶은게 뭔가요"라는 질문을 받은 김 본부장.

"아마 그냥 다른 회사로 옮기지 말라고 설득했다면 이직을 결정했다고 말했을거에요. 그런데 오픈 퀘스천(open question)을 받으니까 생각을 해보게 됐어요"

그는 그 때 하고싶은 일에 대해 세심히 물어봐준 상사 때문에 그 후로는 이직을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씨티그룹은 워낙 큰 회사라 다양한 업무들이 있고 근무처도 많아요. 그래서 주니어들에게도 2~3년 후 뭘 하고 싶은지를 보고 준비하라고 말해줍니다"

돈 때문이 아니라 직장에서는 하고 싶은 업무가 있어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일욕심보다 사람에 집중 = 입행 5년차였을 때 김 본부장은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런던에서 쓰는 시스템을 아시아로 들여오면서 한국 부분을 맡게 된 것이다. 입행 후 처음으로 큰 일을 맡게 되자 김 본부장은 의욕에 불탔다.

"직장 선배들도 잘 할 수 있겠냐고 우려하고 저도 제 자신을 못 믿는 상황인데 부서장님이 할 수 있다며 믿어줬어요. 한번 꽃을 피워보리라 다짐했어요"

그러나 그 일을 인생의 큰 아젠다로 여긴 나머지 동료들과 의논하거나 일을 나눌 생각을 못했다고 한다. 원래 가지고 있는 역량의 100% 이상을 발휘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아쉬움이 크다고 그는 말했다. 일은 잘 마무리됐으나 일부 동료들은 서운한 기색도 보였다고 한다.

"그 때 동료들과 적극적으로 함께 일을 나눴다면 더 수월하게 했을 것 같아요. 역시 중요한 일에 집중할 때일수록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고 함께 일하는게 중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가족에게도 배운다 = 사무실 자리 옆에 귀여운 그림과 '엄마 사랑해요'라고 쓰인 종이가 눈에 띈다. 예전에 주말 근무로 회사에 왔을 때 딸이 그려줬다고 한다.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놓고 흐뭇해 하는 김 본부장이다.

화이트 보드 귀퉁이에도 '엄마 사랑해요'라는 글자가 써 있다. 직원들에게 지우지 말아 달라고 했단다.

김 본부장은 "싱글일 때는 상당히 업무 목표 위주였는데 결혼하면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생각하게 됐다"고 말한다. 직장생활에서 사람들과 같이 가야 한다는데 의미를 두기 시작했다고 그는 강조했다.

"남편 뿐 아니라 새로운 가족이 생기면서 어떤 때는 과도한 에너지를 쏟기도 하고 어떤 때는 생각지도 못한 도움을 받기도 하잖아요. 그런 일이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에요"라고 강조하는 김 본부장.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김 본부장. 칭찬을 챙겨서 해주는 시어머니의 성격에서 많이 배운다고 한다. 상사가 될수록 지적하기는 쉽지만 칭찬을 챙겨서 해주기가 어려운데 직장생활에서 필요한 부분을 가족으로부터 알게 된 셈이다.

김 본부장은 결혼과 가족은 직장생활을 위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되는 '인생의 보너스'라고 말했다.

▲여백이 있는 사람 = "요즘 신입사원들을 보면 교환학생, 인턴십, 어학연수 등 준비를 많이 해와요. 그런데 어차피 다 준비해서 오기는 어렵기 때문에 그런 스펙보다는 자세가 중요하죠"

그는 뭔가 여백이 있고 자신감이 있는 직원들이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일을 잘한다고 말했다. 물론 자신만이 할 줄 아는 강점도 필요하다.

김 본부장은 "스펙 부담을 크게 느껴서 점수 받기에 연연하기보다 자신만의 스토리를 들려줄 수 있어야 한다"며 "회사에서 신입사원에게 기대한 것은 조직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조용조용 설명하는 목소리가 참 듣기좋다.

김희진 본부장은 1990년 씨티은행 서울지점에 입행한 후 증권서비스 캐쉬 매니지먼트팀장, 증권결제업무 팀장, 커스터디서비스팀장을 거쳐 증권관리본부장을 맡고 있다.

syjung@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