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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림 국민은행 본부장>



<편집자주: 유리천장. 일을 잘하고 똑똑해도 사회에서 여성이 높은 지위에 오르기까지 뚫어야 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일컫는 말이다. 금융시장에 종사하는 여성들도 유리천장을 피할 수는 없었다. 금융시장도 4대 은행에 여성임원이 없을 만큼 두껍기로 소문난 유리천장이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유리천장을 깨고 상위 1%로 우뚝 선 여성 금융인들을 만나봤다. 신입사원 시절 조그만 실수에도 주눅이 들고 남몰래 울기도 했던 여직원이 실력파 임원이 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을까. 유리천장 아래서 연약한 꽃으로 남기보다 이를 뚫고 큰 나무가 되는 쪽을 택한 베테랑 여성 금융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선영 기자 = 단정한 검정 원피스와 곱게 묶은 머리 때문일까. 첫인상이 차분하다.

대학원에서 재무관리를 전공해 외은지점에서 출발해 리스크 관리를 주로 해 온 이력. 너무 모범생 다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게 아닐까 걱정되기도 했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게 너무 좋아요. 그나저나 어쩌면 좋아. 술 이제 그만 마셔야 하는데"

박정림 국민은행 WM(웰스 매니지먼트)본부장이 툭 던진 한마디였다. 그는 동료 선후배와 함께 술 한잔하면서 의견을 교류하고 함께 고민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주량을 물었다. 잠시 생각하던 박 본부장이 말했다. 많이 마시면 소주 3병?

의외의 반전과 함께 그의 이야기들은 꽉 막힌 곳 없이 유쾌하게 이어졌다. 박정림 본부장의 은행 생활도 그랬다.

▲목표가 있어서 좋다 = 그는 체이스맨해튼은행에 입행하면서 처음 금융계에 발을 디뎠다. 전공을 사려 리스크 관리 업무를 주로 담당하며 기획재정부 연기금 투자풀 위원, 국민연금 리스크 관리 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전문성을 키워왔다.

2004년 국민은행에 입행한 후에도 리스크 관리 업무를 했으나 이후 펀드, 방카슈랑스 총괄로 자리를 옮겼다. 어찌보면 그간의 이력과는 다른 생소한 일을 맡게 된 셈이다.

"새로운 것을 하니까 좋았어요. 판매, 영업은 목표가 있으니까 재미있어요"

다양한 자산운용사의 펀드 상품 중에서 국민은행 영업점에서 판매할 펀드를 선정하는 일은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것을 좋아하는 박 본부장의 적성에도 잘 어울렸다.

그는 "상품 선정도 리스크 관리에 기반해서 의사결정을 했죠. 어떤 리스크가 있는지 살피고 고객 수익률을 확인했죠"

국민은행이 내놓은 와이즈플랜, 세이프플랜 상품에도 힘을 보태며 관련 업무에 박차를 가했다. 처음에는 낯설었으나 전문성을 위해 즐기기로 마음먹은 덕분이었다.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것도 어찌보면 노력의 대가에요. 여자들은 시키는 일은 잘하는데 배짱이 약하다는 의식이 있는데 이게 싫으면 그렇지 않다는 증명을 해야 합니다"

▲안풀릴 때 자기관리에 신경써야 = 박 본부장은 일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잘 안될 때의 자기 관리라고 강조한다.

모든 일이 잘 풀릴 때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던 문제들도 일이 잘 안되고 인정받지 못할 때는 스트레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하룻밤 자고 나면 별일 아닌 일도 많다. 나 자신뿐 아니라 남들이 봤을 때도 안됐을 때 긍정적으로 자기 관리를 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좌절하기 전에 어떻게 조직에 기여할지, 극복할지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럴 때 자격증으로 무장된 전문성은 큰 도움이 된다.

박 본부장은 CFA 자격증을 땄다. 주말도 없이 3년간 꼬박 공부한 결과였다.

"자격증은 전문성을 제일 확실히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전문성은 여자라서가 아니라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갖춰야 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후배들이 나보다 나은걸 = "직장생활요? 내가 제일 잘한다는 생각 버려야죠. 내가 제일 잘한다 생각하는 순간 여러사람 피곤해져요"

박 본부장은 여러사람이 코워킹(협업)하는 일이 좋다고 말한다. WM본부를 총괄하고 있는 만큼 후배 직원들과의 교류도 중요하게 여긴다. 특히 그는 자신의 원칙만을 고집하기보다 여러 사람의 의견과 능력을 조합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후배들이 저보다 잘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이들의 능력을 잘 조합하되 장단점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건 하루아침에 안되고 훈련이 필요한 일이에요"

이런 과정에서 선후배간의 모임은 윤활유 역할을 한다. 좋은 이야기, 나쁜 이야기 다 들어보고 최종적으로는 함께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낸다는 열린 생각이 바탕에 깔려있다.

박 본부장은 "업무 전문성도 중요한데 기본적으로 모임을 좋아해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밥도 먹고, 술도 한 잔 마시고..좋잖아요"

주말을 빼면 나머지 시간은 직장동료, 친구, 선후배들과 주로 약속을 잡는다는 박 본부장. 소소한 술자리와 마음을 터놓는 대화는 그만큼 친밀한 리더십을 이끌어낸다.

가족과 보낼 시간이 줄어들지 않냐고 묻자 담백한 답변이 돌아온다.

"전업주부와 똑같이 할 수는 없고, 여기까지 왔는데 어쩌겠어요. 그냥 가야지"

▲펀드만 20개 가입, 왜 = 펀드, 방카슈랑스 업무를 맡은 이후 지금까지 박 본부장이 이용하고 있는 펀드나 보험상품은 20개가 넘는다.

"해 본 사람과 안해본 사람의 차이는 상당히 큽니다. 고객한테 권유하려면 직접 가입하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자신의 돈이 들어가면 관심도 많이 생기고 지식도 늘 수밖에 없다. 전문성을 기르는데 도움이 됐을 뿐 아니라 쏠쏠하게 수익도 봤다.

그는 "수익률은 한 20% 정돈데 만약 그 돈을 그냥 갖고 있었다면 다 써버렸을 것"이라며 웃음짓는다.

박 본부장이 올해 주목하는 상품군은 무엇일까.

"연초부터 위험 자산을 늘리라는 뷰가 많은데 올해는 시장 변동성이 좀 클 것 같아요. 안정적인 7~8%대 수익 상품을 목표로 중위험, 중수익을 추구하는게 나을 듯합니다"

그는 올해 예금 금리에 만족하지 못하는 고객들을 위해 이같은 상품 라인을 구축할 예정이다.

그는 매일 플러스를 내는 상품은 없다고 봐야 한다며 매일 보지 말라고 권유한다. 마음도 불편하고 잘못된 결정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시장이 올랐을 때 수익률을 펼쳐보라고 말한다.

투자금액이 꽤 되는데 유럽 위기로 증시가 급락했을 때는 속이 좀 쓰렸겠다고 하자 "물타기도 좀 했다"고 소곤소곤 답한다. 유쾌하고 매력있다.

박정림 본부장은 체이스맨하탄, 정몽준 의원 비서실, 조흥은행, 삼성화재를 거쳐 지난 2004년 5월에 국민은행에 입행했다. 리스크 관리, 재무 관리 등을 주로 맡은 후 펀드, 팡카슈랑스 판매 총괄, WM(웰스 매니지먼트) 본부장을 담당하고 있다.

syj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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