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점옥 신한생명 본부장>



<편집자주: 유리천장. 일을 잘하고 똑똑해도 사회에서 여성이 높은 지위에 오르기까지 뚫어야 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일컫는 말이다. 금융시장에 종사하는 여성들도 유리천장을 피할 수는 없었다. 금융시장도 4대 은행에 여성임원이 없을 만큼 두껍기로 소문난 유리천장이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유리천장을 깨고 상위 1%로 우뚝 선 여성 금융인들을 만나봤다. 신입사원 시절 조그만 실수에도 주눅이 들고 남몰래 울기도 했던 여직원이 실력파 임원이 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을까. 유리천장 아래서 연약한 꽃으로 남기보다 이를 뚫고 큰 나무가 되는 쪽을 택한 베테랑 여성 금융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선영 기자 = "집이 15층이었는데 매일 창문도 다 잠그고, 칼도 숨기고 출근했어요. 애들 떨어질까 다칠까 걱정돼서"

일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지만 보험회사에 입사했으니 고객의 미래를 보장하는 일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기 때문이다.

살림은 넉넉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찍 결혼해서 미닫이문으로 방 한칸을 나눈 집에 신혼부부와 고등학생 시동생이 함께 살았다. 나중에는 시동생 친구들까지 함께 뒷바라지를 했다. 매일같이 노란 철제 도시락을 8개씩 싸는 그야말로 어린 새댁이었던 김 본부장.

그런 그에게 '보험 아줌마'라는 직업은 새로운 생활을 가져다줬다. 살림에 보탬이 됐고 아이들 학자금 마련은 물론 사회생활로 인정받는 계기도 됐다.

그렇게 키운 아이가 작년에 대학을 졸업했다. 김 본부장은 장미꽃 100송이를 사갔다.

"20년 직장생활 하는 동안 한번도 애들 소풍, 운동회 따라가 본 적 없었는데 그래도 대학도 마치고 두 아이 모두 영국에 연수도 시켰죠. 나 자신도 축하하는 의미에서 꽃을 샀어요"

자녀 이야기를 술술 이어가는 모습은 영락없는 보통의 엄마같지만 김 본부장의 보험 내공은 상당하다. 18명으로 시작한 군산지점을 180여명이 근무하는 지점 4개로 키워내는 실력은 이미 입소문이 나 있다.

평범한 '보험 아줌마'로 출발해 신한생명 본부장까지 올라온 그의 파란만장 스토리를 들어봤다.

▲고객이 있는 곳을 찾아라 = 1991년 새댁으로서 보험이 뭔지도 모른 채 입사를 했으니 초창기 생활은 어렵기만 했다.

회사에서 고객 앙케이트를 해오라고 하면 다른 사람 10장 할 때 기껏 2장 해가는 일이 전부였다.

직장이 확실하고 보험에 가입할 것 같은 연령대의 고객이 아니라 65세 넘은 할머니를 첫 고객으로 두었으니 백전백패였다. 고심 끝에 김 본부장은 고객 공략 포인트를 바꿨다.

"한 집 한 집 다니는 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려서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상가가 많고 경제활동 인구가 많은 곳으로 찾아갔죠"

처음에 넘어야 할 산은 경비아저씨였다. 외부인이 못들어가게 막기 때문이다.

"경비아저씨들에게 먼저 설명했어요. 고객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안전장치가 돼주는 것이다. 꼭 필요한 것이라고 설명했죠. 물론 가끔 선물도 드리고"

부지런히 발로 뛴 결과 김 본부장은 첫 달에 보험 유치 여왕을 했다. 고객 확보뿐 아니라 신입 FC(파이낸스 컨설턴트) 확보에도 신경을 썼다. 그리고 1년 만에 팀원을 17명 거느린 매니저가 됐다.

이때만 해도 아이들에게 용돈을 제때에 주고, 엄마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고, 살림에 보탬이 돼서 좋다고 생각했다.

▲고객에게 도움이 돼라 = 초기부터 열심히 뛴 덕분에 점점 노하우도 생겼다. 보험에 대해 설명하고 새로운 고객들을 찾아내는 것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어느날 해태음료 부근의 공장지대를 지나고 있던 김 본부장. 영업직원들이 많이 보였다. 차량에 음료수를 싣고 다니며 가게마다 전달하는 직원들이었다.

"처음부터 그 직원들에게 친밀감을 표하면서 다가가 보험을 들라고 하면안돼요."

김 본부장은 사무실에 찾아가 업무를 총괄하는 주임에게 인사를 하고 설명을 했다. 신한생명FC인데 보장성, 저축성 보험을 판매하고 있으며 장기적인 저축 플랜에 대한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 주임은 직원들에게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설명을 들어보라고 권유해줬다. 절차를 거쳐 어렵게 사는 직원들에게 대출도 소개하고, 내집 마련에 대한 꿈도 심어줬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싶어하는 직원들에게는 첫달 유치원비를 내주고 부인에게 FC로 일하면서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했다.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그 회사 직원들 중 상당수가 고객이 됐다.

처음부터 보험을 팔자는 생각을 하기보다 고객에게 도움이 될 정보를 주려고 마음먹은 것이 통한 셈이다.

▲고객에게 부담주는 일을 해선 안된다 = 그러나 사실 보험 가입을 권유받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답한다. 보험 필요 없다. 아는 사람이 있어서 다 가입했다. 바빠요.

김 본부장은 이런 고객들에게 타사 상품에 대한 설명도 해주면서 부담을 주지 않기로 했다.

"처음에 보험회사 다닌다니까 집안에 한의원 하시던 당숙께서 주변사람들한테 부담 주는 일을 해선 안된다고 하셨어요"

김 본부장은 그래서 고객에게 부담이 되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갖게 됐다. 고객이 꼭 필요로 하는 정보를 알려주는 게 내 일이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그 당숙 어른, 말씀만 하신 게 아니라 적금 상품을 하나 가입했다. 그리고는 만기에도 재예치해주고 바쁜 와중에도 보험료를 꼬박꼬박 챙겨 주는 등 고마운 고객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김 본부장은 고객이 찾아와 예전에 보험에 가입한 덕분에 잘돼서 좋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기분이 좋다.

▲찜질방 새우잠은 기본 = 김 본부장은 입사 4년만인 1994년도에 소장이 됐다. 여사원 하나 데리고 사무실을 냈다. 여기서도 열심히 신입 직원들을 모아 교육시켰다. 2년이 지나서는 전주 덕진 지점장을 하면서 35명의 직원을 두게 됐다.

이후 김 본부장은 군산 지점장으로 발령이 났다. 군산지점은 규모로 보나 출퇴근 거리로 보나 열악했다.

전주에서 1시간 반 동안 차로 출퇴근했다. 시간대별로 세미나가 지속되는 고된 일과의 연속이었다.

직원 18명 정도로 규모가 작았던 군산 지점을 키워보자 마음먹은 김 본부장은 고객 초청 세미나를 열었다. 한집 한집 찾아가는 건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김 본부장은 행사를 개최해 25~50세의 여성 고객들을 불러모았다. 라면 한 박스, 샴푸세트, 프라이팬 등 생필품을 선물로 제공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세미나 참석자들은 보험에 가입하거나 FC로 입사했다. 일주일에 두번 꼴로 일이 늦게 끝날 때면 찜질방에서 새우잠을 잤다. 7센티의 하이힐을 신은 발이 퉁퉁 붓기 일쑤였다.

그 결과 지점 성적은 초기 870만원 정도에서 2년 만에 4천만원으로 늘었다. 김 본부장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성적이 5배 순증하니까 지점을 하나 더 내주더라고요. 지점장으로선 지점 분화는 가장 큰 영예죠"

본부장에 취임한 뒤에는 산하에 있는 21개 지점을 빠른 시일 내에 30개 지점으로 확대하는 게 목표라는 김 본부장, 에너지가 넘친다.

▲일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 "성과나 일에 대한 평가도 중요하지만 조직 내에서 동료 선후배와의 파트너십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는 자신의 앞만 바라봐서는 직장에서 성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혼자 일하는 게 아니라 동료직원, 선후배, FC들과 함께 일해야 하는 김 본부장으로서는 더욱 그렇다.

여성금융인이 되려는 후배들에 김 본부장이 전하는 말도 같다. 그냥 열심히 하고 긍정적인 것이 자신의 장점이라고 말하는 김 본부장.

"시야를 넓게 가지세요. 여성 특유의 장점인 친화력과 세심한 마음가짐으로 몸을 낮춰 일하면 누구에게도 책임자의 자리가 주어집니다"

김 본부장은 지난 1991년 신한생명에 입사하고 나서 2003년 덕진지점장, 2006년에 군산지점장을 거쳐 현재 호남본부장으로 21개 지점을 이끌고 있다.

syj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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