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금융인 열전> 이재경 삼성증권 상무
<여성금융인 열전> 이재경 삼성증권 상무
  • 정선영 기자
  • 승인 2012.03.30 1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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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삼성증권 상무>



<편집자주: 유리천장. 일을 잘하고 똑똑해도 사회에서 여성이 높은 지위에 오르기까지 뚫어야 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일컫는 말이다. 금융시장에 종사하는 여성들도 유리천장을 피할 수는 없었다. 금융시장도 4대 은행에 여성임원이 없을 만큼 두껍기로 소문난 유리천장이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유리천장을 깨고 상위 1%로 우뚝 선 여성 금융인들을 만나봤다. 신입사원 시절 조그만 실수에도 주눅이 들고 남몰래 울기도 했던 여직원이 실력파 임원이 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을까. 유리천장 아래서 연약한 꽃으로 남기보다 이를 뚫고 큰 나무가 되는 쪽을 택한 베테랑 여성 금융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선영 기자 = "나 아무래도 이 일이 안 맞나 봐"

사회생활 첫발을 디딘 새내기 직원에게 이런 생각은 늘상 꼬리를 문다. 이재경 삼성증권 상무의 20여년 전 출발도 그랬다.

그는 비서학과를 졸업하고 하얏트호텔 총지배인 비서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아름다운 호텔과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고객들, 세련된 매너. 남들 보기에는 멋진 비서직이었지만 어쩐지 탐탁지 않았다. 첫 사표를 냈다.

외국계회사의 한국지사로 옮겼다. 개방적이고 다양한 업무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어서 좋았으나 앞으로의 경력을 쌓아갈 생각을 하니 다시금 고민이 시작됐다. 두 번째 사표를 냈다.

씨티은행에 입행했다. 은행 업무를 잘해봐야지 각오를 다졌다. 그러나 일은 생각만큼 녹록지 않았다. 실수도 잦았고 시재가 안 맞아 밤늦게까지 남기 일쑤였다.

"텔러직이 너무 안 맞는 거에요. 나는 여기서는 도저히 팀장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죠"

그랬던 그가 금융권에서만 17년을 보내고 삼성증권 상무가 됐다. 이재경 상무의 눈매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때의 나를 알던 지점장은 지금 삼성증권 임원이라고 하면 의아해해요. 어리숙하고 실수만 하던 직원이 어떻게 된 거지 라면서"

단정한 외모와 세련된 말투를 보면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술술 흘러나온다. 그의 삶에 기적이 일어난 걸까. 실수투성이 새내기 직원에서 삼성증권 영업추진담당 상무에 이르기까지 이재경 상무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나는 진짜 일을 못한다? = 그때는 인터넷이 없어 도스를 썼다. 업무마다 모든 코드를 다 외워야 능수능란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모든 업무가 수기로 이뤄졌다.

"업무처리를 하려면 뭐가 딱딱 맞아야 하잖아요. 아무리 해도 잘 안 되는 거에요"

서류 작업은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창구 앞에 줄 서 있는 고객들을 보면 빨리 처리해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그러나 마음이 급해지면 또 실수를 해서 혼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를 눈여겨본 상사가 텔러직은 안 맞는 것 같다며 영업직으로 전환시켰다. 그런데 업무가 달라지자 이 상무의 능력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차분하지 못하고 덜렁대기 일쑤였던 급한 성격은 영업직에서는 장점이 됐다. 그를 만난 고객 누구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성격이 급해 피드백이 빨랐고 단시간에 고객의 업무를 집중적으로 처리해줬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 때문일까. 이재경 상무는 직원들의 커리어 패스에 관심이 많다. 후배 직원이 뭘 하고 싶은지에 신경을 많이 쓴다. 다른 부서에 가고 싶다는 직원이 있다면 아까운 인재라도 적극적으로 도와주려 한다.

"지금 일을 좀 못한다고 능력이 떨어진다고 할 게 아니에요. 사람마다 자기에게 맞는 일이 다를 뿐이죠. 자신에게 맞는 일을 빨리 찾아야 해요"

그는 만약에 일을 잘못하거나 하는 일에 비해 평가를 제대로 못받고 있다면 본인이 제자리에 있는지 먼저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상사가 구원해주길 기다리기 전에 먼저 나서야 한다고 힘줘 말한다.

"그 때 누군가 나를 영업을 전환시키지 않았으면 지금의 내가 없지 않았을까요"

▲미쳤다는 말을 듣다 = 은행 창구 업무에 적응하지 못해 온갖 구박을 받던 시절을 접고 이 상무는 대출 업무를 맡게 됐다.

한 고객이 지방에 있는 아버지 소유의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으러 왔다. 본인 확인과 자필 서명은 물론 담보가 되는 집도 확인을 해야 했다. 차장님에게 주말에 고객을 만나러 지방에 좀 다녀오겠다고 했다.

"미쳤어. 대출 하나 하자고 주말 하루를 다 버리고 시골에 간다고?"

상사는 미쳤다고 했다. 그래서 은행을 쉬는 일요일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도 한참 걸렸다. 기차역에서 그 고객의 친척 한 사람이 마중을 나와 약 1시간 정도 시골길을 차로 달렸다.

집 한 채 없는 휑한 시골길을 가다보니 이 상무는 그 1시간이 공포의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누구의 차를 탄 건지도 모르고 너무 용감하게 낯선 사람을 따라나선 것이 덜컥 겁이났다.

자동차가 벌판을 지나 이층으로 된 벽돌집 앞에 멈춰서고 나서야 마음을 놓았다. 그래서 처리한 대출은 8천만원 규모였다.

"당시 근무하던 지점이 영업실적 1등을 했어요. 나도 거기에 한 몫했으니까 기분이 너무 좋았죠"

영업에서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삶은 달라졌다. 이후 삼성증권에 입사해서는 101가지 상담 기법을 케이스별로 정리해 직원들을 교육하는 업무를 맡을 정도였다.

▲고객에게 안맞으면 팔지마라 = 영업 업무는 생각보다 그에게 잘 맞았다. 그는 차츰 영업에서 발판을 다져 고액자산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PB(프라이빗뱅킹)업무를 맡았다. 책임감 있고 신뢰를 주는 그의 업무 태도는 고객들로 하여금 안심하고 자산을 맡길 수 있게 했다.

그는 "금융은 신뢰의 영업이 기반이 돼야 해요. 무형의 자산을 파는 일인데 신뢰를 쌓으려면 책임감있는 행동은 필수입니다"라고 말한다.

이 상무는 고객의 자금 활용 계획에 맞지 않는 상품은 팔지 않는다. 1년안에 쓸 돈을 3~5년 만기의 주식형 펀드에 묻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중간에 고객이 돈을 써야 한다면 장기 상품을 권해서는 안되죠. 자금이 물리면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훨씬 손해잖아요. 꼭 물어봐야 합니다"

한 수십억대 자산가였던 고객의 경우에는 펀드를 한 개도 팔지 않았다. 그 고객은 조금의 위험도 감내하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분은 조금만 손해나도 밤잠을 못주무시는 고객이었어요. 말만 했다면 펀드도 가입하셨겠죠. 그렇지만, 순간의 영업 실적 때문에 고객의 투자 성향을 무시하고 펀드를 권할 수는 없었어요"

신뢰의 힘은 크게 돌아왔다. 씨티은행에서 삼성증권으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도 예전 고객들이 삼성증권 직원들에게 미리 이 상무를 소개해주기도 하는 등 덕을 많이 봤다.

그는 고객에게 권하는 상품에 가급적 먼저 가입해 보기도 했다. 고객이 상품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1~2시간 할애해 설명을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천연가스, ELS(주가연계증권), 주식형 펀드 등 다양한 상품에 가입해서 수익도 봤지만 때로는 손실을 보기도 하죠. 그래도 먼저 이용해보고 설명하면 고객에게 더 잘 알려줄 수 있어요"

▲노력한 만큼 나온다 = 영업은 정말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온다고 이 상무는 강조한다.

"한 번 전화할 걸 백 번 하고, 한 사람 만날 걸 백 사람 만나는데 결과가 나쁘기는 어렵죠. 노력해야 결과가 좋아질 수 있어요"

그는 영업 실력을 톡톡히 발휘했다. 2002년에 삼성증권에 입사한지 3년만인 2005년에는 삼성증권 첫 여성 지점장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지점장을 맡았을 때도 노력하는 영업 스타일에 대한 원칙은 변하지 않았다. 펀드 붐이 일면서 수익률이 높아지던 시기여서 실적은 고공행진을 펼쳤다.

세전이익이 7억원 수준이던 지점은 78억원 수준까지 수익이 급증했다. 한해 두 배 가까이 성장을 일궈낸 것이다.

그는 좋은 직원들을 스카웃하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수십번 만나본 후 직원으로 채용하는 등 인력 욕심도 있다.

"좋은 인재를 채용하기 위해 만나고 기다리는 일도 중요합니다. 삼고초려도 필요하면 해야죠"

영업을 잘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인재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이는 실적 1위로 인정받는 그만의 비법이기도 하다. 그는 지금 삼성증권의 리테일 영업을 총괄하고 있다. 어리어리한 막내직원 시절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었다.

▲나는 뒤끝없다 = 그는 쿨하다. 뒤끝이 없는 편이어서 그때그때 스트레스가 덜 쌓인다.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낄 정도로 혼이 났는데도 잘 잊어버리는 성격이에요. 나중에 보면 기억이 안나요"

그러나 쿨하다는 건 단점도 많다고 이 상무는 말한다.

"뒤끝이 없는 성격이에요. 남편은 나보고 쿨하고 뒤끝 없어서 좋긴한데 남한테 상처주고도 스트레스 없으면 안된다고 해요"

이런 성격 덕분에 그는 항상 새로운 일을 맡을 때마다 설렌다. 요즘 그의 관심사는 무엇일까.

"다른 것보다 사람들의 감정을 잘 봐야 할 듯해요. 인문학 공부도 좀 하려고 해요.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게 요즘 관심사에요"

그는 금융인이 되고 싶은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금융시장은 공정합니다. 결과가 투명하게 나오기 때문에 빨리 받아들고 승복할 수 있죠. 그만큼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옵니다. 향후 금융시장의 부가가치는 더욱 높아질 거에요. 좋은 인재들이 많이 진출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재경 삼성증권 상무는 1995년 씨티은행에 입사하며 금융권에 첫발을 디뎠고 2002년에 삼성증권에 입사해 PB교육을 맡았다. 이후 삼성증권 FN아너스테헤란지점장(현 SNI강남파이낸스센터)을 거쳐 펀드리서치 파트장, 투자컨설팅팀장, UHNW사업부장 상무를 거쳐 현재 영업추진담당 상무로 재직하고 있다.

syju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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