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경 한국은행 금융시장부장>



<편집자주: 유리천장. 일을 잘하고 똑똑해도 사회에서 여성이 높은 지위에 오르기까지 뚫어야 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일컫는 말이다. 금융시장에 종사하는 여성들도 유리천장을 피할 수는 없었다. 금융시장도 4대 은행에 여성임원이 없을 만큼 두껍기로 소문난 유리천장이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유리천장을 깨고 상위 1%로 우뚝 선 여성 금융인들을 만나봤다. 신입사원 시절 조그만 실수에도 주눅이 들고 남몰래 울기도 했던 여직원이 실력파 임원이 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을까. 유리천장 아래서 연약한 꽃으로 남기보다 이를 뚫고 큰 나무가 되는 쪽을 택한 베테랑 여성 금융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선영 기자 = "성격이 맞다고 생각하고 다닌적은 없어요. 입사했을 때 일을 해보니까 신기하고 재밌었더라구요. 그게 지금까지 온 거죠"

한은의 핵심 기능 가운데 하나인 공개시장조작과 금융시장 모니터링을총괄하는 서영경 금융시장부장이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보수적이고 무거운 이미지의 직장으로 손꼽히는 중앙은행에서도 주로 조사, 리서치 분야에서 24년동안 근무해왔다.

재미없지 않았냐고 묻자 그는 "처음 입사해서 일했을 때 흥분될 정도로 재미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물가 안정과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한국은행은 학구적인 분위기로 유명하다. 사실 서 부장은 입행할 당시만 해도 이 곳이 뭐하는 곳인지 잘 몰랐다. 대학원 공부를 더 하려다가 선배의 소개로 채용시험에 응시했는데 2차, 3차 전형이 진행되면서 이미 발을 뺄 수 없게 된 터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있던 해에 입행했으니 올해 햇수로 24년 째다.

입사 당시 지원한 '조사국' 업무는 그대로 조사,리서치 쪽으로 이어져 서영경 금융시장부장의 전문 분야가 됐다.정규직으로 근무하는 한은 여직원 중에서 가장 연차가 높은 '왕언니'다.

20여년간 한은에서 일하는 동안 서영경 부장을 매료시킨 것은 경제이론과 현실이 어떻게 접목되는지를 직접 겪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기준금리 결정을 비롯한 통화정책은 물론이고 국제금융시장과 국내 이슈 등 이론과 현실의 연결고리를 찾는 일 하나하나가 떨릴 정도로 신나는 일이었다.

"선후배가 뭉쳐서 경제를 함께 고민하는 그런 문화가 좋았어요. 사람들이 좀 아카데믹하긴 하잖아요. 점잖고"

빠르게 진행되던 나직한 목소리가 미소로 이어진다.

▲'폭풍 칭찬'의 힘 = 조사역으로 입행했을 때 조사부(현재 조사국) 국제무역팀으로 첫 발령을 받았다. 당시에는 조사역들이 돌아가면서 주보를 썼다.

제 이름을 걸고 쓰는만큼 부담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부담은 평소 무섭게 차장, 과장들을 혼내는 윗분들에게 보고된다는 점이었다. 조사역들은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호랑이' 상사들은 조사역들에 대해 얼떨떨할 정도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바로 위 선배들은 우린 칭찬도 별로 못받았는데 하면서 부러워했다고 한다. 서영경 부장은 당시 폭풍 칭찬의 기억이 지금도 좋게 남아있다.

"국장급 선배들이 조사역들에 칭찬을 많이 해줬어요. 아들보다 손주가 귀여운 것처럼 그랬던 것 같아요"

서 부장은 한은은 인적구성도 좋고 자료도 많아서 훨씬 실용적인 페이퍼를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동향이나 이슈를 쫓아가면서 보고서를 쓰느라 분석이 쉽지 않을 때는 의외의 분기점이 찾아왔다.

▲잉? 전산팀 발령? = 국제,조사 업무를 주로 해 오다가 전산정보국 발령을 받는 것은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

"한은에서는 부서마다 전문성이 있어서 부서를 옮기면 마치 직장을 옮기는 것과 마찬가지의 느낌이 들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한은 내에는 경제통계, 발권, 통화정책, 결제, 외환보유액 운용 등 전문성을 요하는 다양한 부서가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몇몇 부서는 적응에만 2년이 걸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니 부서별 특수성이 뚜렷하다.

새 직장을 갖는 기분으로 전산팀에 발령받은 서 부장. 1990년대에 한국은행이 홈페이지 개설 업무를 비롯해 현재 경제통계시스템인 'ECOS'의 초기 작업을 맡았다.

"ECOS 이름 아이디어를 냈는데 그게 지금 ECOS가 됐죠"

전산팀 근무 당시 경제통계시스템 ECOS의 이름을 지은 것이다. 참 아이디어를 잘 냈다고 하니 담담하게 말한다.

"아니 뭐. Economic Statistics System. 그냥 말그대로 경제 통계 시스템"

하면서 웃는다. 생각해보면 그것도 그렇다. 경제통계시스템.

그렇게 시작된 ECOS는 현재 우리나라 100여개의 주요 통계지표와 각종 데이터를 제공하는 한국은행 통계전용 홈페이지까지 구성돼 탄탄하게 자리를 잡았다.

▲40대에 미국行 = 리서치 업무를 7~8년쯤 하고 어느 정도 한계가 느껴졌을 때 미국 유학을 가게 됐다. 박승 총재 시절 여성 인재들에 대한 유학 대상 연령이 35세에서 40대로 확대되면서 기회가 생긴 것이다.

"마흔 넘어서 유학을 가니까 쉽지는 않았죠. 한ㆍ미 FTA 효과와 우리나라, 중국간 무역 등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었어요"

국제무역을 전공하고 돌아온 서 부장은 국제경제실장을 맡았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금융시장이 출렁일 때였다.

당시 서 부장은 우리나라 펀더멘털은 좋은데 왜 금융 쇼크에 약할까 하는 고민에 휩싸였다.

"겉모양은 좋지만 자본이동의 경기순응성이나 외환부문의 취약성은 지속됐던 셈이죠. 관련 페이퍼를 계속 쓰고 정책을 위한 이론적 측면을 두루 살필 수 있었어요"

금융위기 이후 자본유출입 변동 완화방안이나 선물환포지션한도 축소, 원화 용도 국내발행 외화표시채권 투자 제한 등 외환거시건전성 정책이나 외환건전성 부담금 제도 도입 등 정책들이 쏟아져나왔다. 그만큼 경제 상황에 대한 점검과 꾸준한 연구가 절실하던 때였다.

"한국은행 들어와서 가장 집중해서 일한 시기였어요. 금융의 경기순응성이나 은행의 시스템 문제 등 선진국에서 주로 연구가 이뤄졌던 부분들을 신흥국의 문제에 접목시켜가는 과정이었어요. 외환부문 캐피탈 플로우에 대한 문제도 다뤘죠"

주말도 반납해가며 집중해서 일했음에도 힘든 줄도 모르고 일할 정도였다고 한다. 금융위기라는 격변를 겪고 난 터라 국제경제실의 업무는 더욱 막중했다.

마흔에 접어들어 다녀온 미국 유학을 통해 해외에서 국내 시장을 볼 수 있는 시각을 갖추게 된 것도 큰 발판이 됐다.

그런데 미국 유학 이야기에 서 부장이 잠시 수줍은 웃음을 짓는다.

"40대에 유학을 가서 아직 지도교수에게는 나이를 말 못했어요. 놀랄까봐.동양인이라 어리게 보던데"

▲평균적으로 잘해라 = 고비도 있었다. 두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7개월에서 1년 정도 출산 휴가를 갔는데 꽤 힘든 시기였다고 한다.

그 때는 출산 휴가를 다녀오면 경력을 깎았다고 한다. 이후 경력이 복구됐으나 과장 승진은 1년 정도 늦어졌다. 출산휴가 이후 뒤쳐진 것 같은 마음에, 주변 동료들 시선에 마음 고생도 좀 했다

"대부분 육아를 개인적인 일로만 여기는데 결혼과 출산은 개인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조금 뻔뻔하더라도 자신감을 잃지 말아야 해요"

그는 이 시기를 못버티고 그만두는 것보다 잠시만이라도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고 생각하고 버티라고 말한다.

"1~2년만 보면 당장 그게 끝인 것 같아 관두는 동료들이 많았는데 너무 아까워요. 길게 보고 평균적으로 잘하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할 듯합니다"

그는 결혼과 출산에 대한 부담으로 사표를 내기보다 당장은 좀 뻔뻔스러워 보이더라도 조금 속도를 늦추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차츰 다시 남들보다 열심히 해서 복구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복구를 하려면 초년병 시절부터 열심히, 성실하게 일해놔야 해요. 처음부터 강렬하게 인상을 심어놔야 좀 찍혀도 다시 복구가 가능하죠"

항상 고득점을 하는 것보다 중간 중간에 좀 못하더라도 평균적으로 잘하는게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회사 생활에 대한 원칙도 그렇다. 남자들에 지지 않으려고 끝까지 술자리에서 버텨가며 무리를 하는 것보다 적당한 템포로 스스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여자라서 빠지고 봐주길 바라면 안됩니다. 그러나 스스로 조절할 필요는 분명히 있습니다"

▲도망가거나 정면승부 하거나 = 스트레스 해소비법을 묻자 "도망가거나 정면승부하거나 둘 중 하나죠"라며 망설임없이 답한다.

우선 스트레스로부터 완전히 도망가서 머리를 비우고 영화, 운동, 수다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면 승부해서 그 일을 끝장내는 쪽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일을 하면서도 스스로 뭐가 맞는지 집중해서 봐야 해요. 조직에서 알아서 해주겠지 맡겨놓기보다 본인의 경력은 본인이 관리해야 합니다"

서 부장은 목표를 설정해서 경로를 만들 것을 조언했다.

금융시장부장을 맡은 후 서 부장은 마켓 오퍼레이션, 모니터링에 더욱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선진국은 중앙은행이 돈을 푸는 역할을 하지만 한국은 해외 자본 유입이 많아 주로 돈을 빨아들입니다. 다양한 수단을 통해 마켓 오퍼레이션에 노력을 기울이고 향후 물가안정, 금융안정을 위해 시장의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읽어낼 수 있도록 시장 모니터링에도 주력할 생각입니다"

한국은행에 진출하고 싶은 후배들에 대한 조언은 심플하다.

"중앙은행은 영리를 추구하거나 치열하게 정치적 경쟁을 하는 곳이 아닙니다. 각자 전공을 살려 전문성을 기르면 여직원들이 충분히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서영경 부장은 1988년 한국은행에 입행해 조사부, 대전지점, 전산정보부 등을 거쳐 금융경제연구원 국제경제연구실장, 국제국 국제연구팀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은 통화정책국 금융시장부장을 맡고 있다.

syj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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