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남 도이치은행 전무>



<편집자주: 유리천장. 일을 잘하고 똑똑해도 사회에서 여성이 높은 지위에 오르기까지 뚫어야 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일컫는 말이다. 금융시장에 종사하는 여성들도 유리천장을 피할 수는 없었다. 금융시장도 4대 은행에 여성임원이 없을 만큼 두껍기로 소문난 유리천장이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유리천장을 깨고 상위 1%로 우뚝 선 여성 금융인들을 만나봤다. 신입사원 시절 조그만 실수에도 주눅이 들고 남몰래 울기도 했던 여직원이 실력파 임원이 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을까. 유리천장 아래서 연약한 꽃으로 남기보다 이를 뚫고 큰 나무가 되는 쪽을 택한 베테랑 여성 금융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선영 기자 = 돈을 벌고 싶었다. 그러나 딜링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밤마다 악몽을 꿨어요. 하루는 북한이 쳐들어오고, 하루는 달러-엔이 뒤집히는 꿈을 꿨죠. 딜링은 365일 밤샌다고 돈을 버는 게 아니니까"

외은지점에 들어온 후 첫 딜링을 시작했을 무렵. 박현남 전무는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출근을 했다.

휴장이라 스크린이 멈춰 있는 날도 멍하니 스크린을 보고 있곤 했다. 비가 오고 눈이 와도 일단 회사에 와서 쉬었던 셈이다. 50Kg대였던 몸무게가 38Kg이 되도록 살이 쪽쪽 빠졌다. 그러나 시장의 돈은 냉정했다. 성실하다고 해서, 운다고 해서 벌어지는 게 아니었다.

"아버지 산소에 가서 한바탕 울었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봄날을 나도 누릴 자격이 있는데 싶었어요"

포지션만 잡아도 가슴이 뛰는 신입 딜러. 정식 버짓이 주어진 것도 아닌 상황에서 뭔가를 단기간에 보여주겠다는 생각을 버리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을 짓눌렀던 바윗덩어리를 녹여 없앴다.

마음의 여유를 되찾자 수익은 따라왔다. 1999년도에 도이치은행으로 자리를 옮기고 10여년을 딜러로 일했지만 그에게 FX시장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매일 매일 다르잖아요. 북한 로켓이나 프랑스 대선 등 다양한 변수들을 매일 접하다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아직도 시장에서 거래할 때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죠"

초반에 호되게 단련된 덕분일까. 지금까지도 딜링 감각은 나이들지 않고 있다.

"나이 밝히면 안돼요. 난 여전히 28살이라고 우기고 있다니깐"

박 전무가 얼굴에 미소를 활짝 담는다. 예전에 펑펑 울던 꼬맹이 딜러는 이제 없다. 그는 도이치은행 서울지점에서 글로벌 파이낸스&FX(GFX) 헤드를 맡고 있다.

▲MD(매니징 디렉터) 됐으니 딜링 손떼라고? = 박 전무는 이제 매니징 디렉터가 됐으니 큰일을 하고 딜링은 손 떼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러나 그에게 포지션은 딜러들과 소통하기 위한 창구이기도 하다.

"포지션을 잡지 않으면 딜러들의 거래를 이해 못해요. 환율 다 빠지고 나서 너 그때 왜 안팔았냐고 다그치면 안되는 거잖아요. 답을 보고 하면 누가 못해"

그는 도이치의 시니어들은 시장을 보는 것을 절대 소홀히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임원들도 시장을 보는 것이 습관화돼 있어 딜링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높다.

100만달러에도 가슴을 졸이는 신입딜러 시절의 부담감은 물론 본인 뷰와 시장이 거꾸로 갔을 때의 허탈감까지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인 셈이다.

"시장은 항상 옳다. 겸허하게 받아들여라"

박 전무가 항상 강조하는 말이다. 그는 시장이 자신의 뷰와 반대로 움직이거나 비이성적으로 움직인다고 해서 화를 내는 것은 어리석다고 말한다. 딜러는 그런 시장 안에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에 맞춰서 빨리 액션을 취해야 해요. 의사결정은 빨라야 합니다"

▲"사랑에 빠지세요" = 머리가 좋은 사람은 열심히 하는 사람만 못하고 열심히 해도 즐기는 자를 따라갈 수는 없다고 했다. 자신이 뭘 할 때 가장 즐거운지를 아는 게 스트레스 관리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박 전무는 말한다.

"회사에서는 분 단위로 쪼개서 바쁘게 일하세요. 그리고 다른 시간에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세요"

사회생활에서 받는 상처들을 어루만져줄 대상은 연인이나 가족 등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내면서 위로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휴가도 반납하고 일에 너무 올인을 하는 사람은 좋지 않아요. 결과가 기대에 못미치면 상처를 받잖아요. 일하지 않을 땐 사랑에 빠지는게 가장 좋아요"

이미 365일 회사일에 집착하다가 마음고생을 해 본 적이 있는 박 전무로서는 그야말로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인 셈이다.

"저는 신입사원들이 열심히 일하겠다고 말하면 이렇게 말해요. 열심히 일하는 건 원하지 않는다. 잘하는 걸 원한다"

그는 젊은 직원들에게도 회사일을 마치면 연애나 운동에 집중하라고 강조한다. 물론 딜러라는 직업상 잠자는 시간을 빼면 시장과 수익률을 체크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일하며 받는 스트레스가 훨신 줄어들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갈등은 답을 찾아가는 과정 = 도이치로 옮긴 후 박 전무는 '잘 풀리는 딜러'가 됐다.

2004년. 한은 금리 인하 이슈 등으로 이자율 시장이 급변해 힘든 시장이었지만 수익은 꾸준히 좋았다. 일에 집중하는 시간은 다시 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얼굴이 마비되고 어지럽더니 안면마비가 왔다. 과도하게 스트레스를 받아 병이 된 것이다. 어렵게 병원을 찾았는데 뇌혈관질환 진단을 받았다. 자칫 잘못했더라면 혈관이 풍선처럼 부풀어 터질 수도 있는 위험한 상태였던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안면마비 증세가 오면서 미리 발견을 해 수술을 마칠 수 있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박 전무는 달라졌다. 어려운 일들이 생겨도 의연히 대처할 수 있게 됐다.

"죽음, 해고 등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부서원들 간에 갈등이 일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는 것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죠. 마음의 여유를 갖고 보게 됩니다"

▲로스컷 잘하는 딜러가 No.1 = 외환딜러로 오랫동안 일해왔기 때문에 2007년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던 날은 아직도 충격으로 남아있다. 손실을 보지 않은 외은지점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금융권이 발칵 뒤집혔던 때였다.

"그때는 로스컷을 누가 먼저, 확실하게 하느냐가 관건이었죠. 9월부터 연말까지 포지션 언와인딩은 가장 큰 과제였어요"

악몽같은 시간이 지난 후 2008년에 접어들어서는 오히려 외은지점들이 손실을 대부분 만회하고 수익이 급증했다. 도이치은행 서울지점도 당시 아시아 지역에서 메이저 지점으로 떠올랐다.

"P&L(수익과 손실)이 순간순간 바뀌는 딜러들로서는 돈을 많이 버는 것만큼 로스컷을 잘하는 사람도 굉장히 훌륭한 딜러라고 봅니다. 딜러별로 로스컷 한도가 있는데 그걸 잘 지켜야 하는거죠"

그래서 딜러들을 뽑을 때도 성향별로 분석해서 배치한다. 리스크 테이킹을 잘하는 딜러가 있는가 하면 보수적으로 운용하는 딜러도 있다.

"모든 딜러가 공격적으로 리스크를 취하면 큰일 나죠. 대박을 기대해선 안돼요. 거래 스타일이 다른 딜러들을 분산해서 배치해 헤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 고집 안된다 = 그가 직장생활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유연성이다. 상황에 따라 빠르게 대처하고 눈치것 행동해야 한다고 박 전무는 강조했다.

"젊은 직원들 중에는 능력은 좋은데 자기 세계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나 함께 일하는 직장에서 나는 이러니까 하고 고집하고 있으면 안됩니다"

박 전무는 내성적인 성격이라면 고치려고 노력할 것을 조언했다. 주변 동료들과 어울리면서 지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머러스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해요. 해외에서 외국인 상사들과 함께 일을 하다보면 같은 일을 해도 약간의 유머와 센스를 곁들이는 게 좋다는 생각을 합니다. 평가도 당연히 더 좋아지죠"

사표는 갈등에서 빠져나가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저는 후배들에게 그래요. 너는 일 때문에 몸무게 38Kg까지 빠져봤냐고. 인간관계가 힘들다고 그만두려 하는 건 안타깝습니다"

도망가도 해결되는 문제가 아닐 때는 정면 돌파하라고 박 전무는 힘줘 말했다. 당장 사표를 낸다고 해서 인간관계 문제가 다른 직장에서는 더 좋아지라는 법도 없다.

"어려운 상황일 때는 가급적 의사결정을 미루는게 좋아요. 올바른 결정을 못하니까. 나무도 자를 때는 겨울에 자르면 안된다고 하잖아요. 겨울에는 죽은 것 같던 나무도 봄이 오면 어떻게 바뀔지 모릅니다"

박현남 전무는 파리바은행(현재 BNP파리바은행)을 거쳐 지난 1999년에 도이치은행에 입행했다. 현재 도이치은행 서울지점에서 유일한 여성 MD(매니징 디렉터)로서 Global Finance&FX(GFX) 등을 총괄하고 있다.

syj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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