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곽세연 기자 = 그가 돌아왔다.

`23년 리서치맨' 홍성국 전무가 다소 침체된 대우증권 리서치센터를 살리라는 특명을 받고 리서치센터장 자리에 다시 앉았다. 리서치센터를 떠난 지 3년 만이다.

홍 전무는 13일 "안주하는 마음을 버리고 마음가짐을 바꿔 최고의 질을 자랑하는 리서치센터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은퇴 연구소인 미래설계연구소장에 다음주부터 리서치센터장을 겸직하게 된 홍 전무는 "리서치 질을 높이기 위해 밑바닥부터 손을 대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우증권은 전통적인 리서치 명가다. 워낙 배출한 스타 애널리스트가 많아 애널리스트 사관학교로 불린다. 그러나 최근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의 명성은 예전만 못하다.

그가 리서치 센터에 온 것은 이런 위기감에서 비롯됐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홍 전무는 2000년 4월부터 투자분석부장을 맡아 대우사태 이후 침체됐던 대우증권 리서치센터를 리서치 명가로 다시 일군 일등 공신으로 평가받았다.









그는 "리서치 어시스턴트(RA)가 많은데 제대로 교육을 시켜 미래를 대비한 예비군으로 만들겠다"며 "기존 애널리스트는 투자 환경이 과거와 완전히 달라진 만큼 바뀐 환경에 맞는 리서치를 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 전무는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시기가 아니라 마음 가짐이다(Youth is not a time of life-it is a state of mind)'는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란 시를 꺼냈다.

"나이는 문제가 없는데, 생각하는 게 30대가 50대 같이 굳어있는 경우가 있다. 리서치센터 전원을 30대로, 청춘으로 만들겠다"는 그는 "똑같은 접근 방법이 아닌 새로운 시각의 분석을 하겠다. 지금 주식시장이 침체돼 있는데 워낙 싼 상태다. 새로운 상승 논리를 개발하겠다"고 자신했다.

홍 전무 앞에는 `대우증권 맨', `토종 리서치센터장', `넉넉한 옆집 아저씨' 등의 수식어가 붙는다.

증권가에서 흔한 MBA, 박사 학위도 없고, 이동이 잦은 증권맨 특성과 달리 오로지 대우증권에서만 일을 했다.

1986년 서강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군대를 다녀온 뒤로는 1년 반의 지점생활과 4년간의 법인영업 근무를 제외하고 줄곧 리서치센터에서 근무했다. 투자분석부장, 리서치센터장을 하다 임원이 된 뒤에는 법인영업, 은퇴 연구소에서 3년간 외도 아닌 외도를 했을 뿐이다.

홍 전무는 "3년간도 나름대로 애널리스트 활동을 했다"며 "술을 잘 먹나, 골프를 잘 치나(웃음), 법인영업 하면서도 시장 얘기를 많이 했고 자주 프리젠테이션을 나갔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술을 매우 잘 마신다.

아직도 꿈은 미래학자라는 그는 `디플레이션 속으로'(2004년), `세계경제의 그림자, 미국'(2005년), `글로벌 위기, 이후'(2008년), `미래설계의 정석'(2012년)이라는 책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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