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권용욱 기자 = "숏이든 롱이든 시장의 방향성을 예측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현재 시장이 분명히 쏠려 있다는 게 문제다. 지금처럼 증권사들의 채권 보유 듀레이션이 길었던 경우가 없었다. 금리가 상승한다면 단기투자기관들이 엄청나게 매도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최경진 도이치방크 본부장은 외국인의 원화채권 보유 150조원 돌파도 무난할 것으로 보는 등 외국인의 원화채 매집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계기로 시장의 방향성을 예단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일본형 장기 불황에 대한 우려 속에 무조건적인 채권 롱 베팅에 몰리는 것은 시장에 대한 맹신이란 게 그의 주장이다.

최 본부장은 7일일 연합인포맥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원금 보존이 중요해진 시기에 넘처나는 유동성으로 채권을 투자해야 한다면 장기투자기관들이 나서야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단기투자기관들의 매수세가 거세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내년 국내외 경기 여건과 채권금리의 방향성에 대해 "현재 상황에서 누구도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일부의 주장처럼 시장이 일방적으로 강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원화채권 시장에 외국인의 수요는 앞으로 더욱 확대되는 것이 분명하지만, 바닥을 다지는 국내 경기로 인해 채권금리도 빠르지 않은 속도로 점차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외국인, 들어올 수밖에 없는 이유= 최 본부장은 최근 늘어난 글로벌 중앙은행의 원화채 매집은 당연한 결과로 보고 있다. 특히나 다른 신흥국 대비 원화의 절상 강도와 폭을 비교할 때 중앙은행이나 글로벌펀드의 입장에서 자산 포트폴리오에 편입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외국 중앙은행들의 채권 매집이 한번 결정되면 추가적인 투자 규모와 시기는 기계적으로 정해진다.

최 본부장은 "기축통화대비 이머징 커런시의 강세를 봐야 할 때 아시아 채권은 사는 게 맞다. 그중에서도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채권시장 규모로 보면, 호주보다 한국이 크다. 유동성을 고려할 때 한국을 빼면 답이 안나온다"고 말했다.

국내 국채시장의 외국인 비중이 10% 후반대지만 호주는 80%를 상회하고 인도와 말레이시아도 각각 3~40%대에 이른다. 이것은 곧 국내 시장에서 외국인 비중이 확대될 여지가 더욱 크다는 게 최 본부장의 분석이다.

그는 "글로벌 경기가 좋아지고 주식이 좋아지더라도 글로벌 채권자금들이 주식으로 이동하기는 쉽지 않다"며 "글로벌 펀드 입장에서는 어떤 나라의 통화가 더 강해질 것인지를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통화가 더 강해질 수 있는, 즉 베타가 높은 나라의 채권들로 글로버 자금은 빠르게 이동해 왔고, 앞으로도 이런 추세는 계속될 것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최 본부장은 "중앙은행들은 투자 국가의 국채 듀레이션을 철저히 따르는 편"이라며 "국채 듀레이션이 5년 후반대 (9월 기준 국고채 평균 잔존 만기 5.74)이기 때문에 3년부터 10년까지 골고루 사면 되겠다는 판단 속에 5~7년 등을 중심으로 원화채권을 사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앙은행들이 비지표 국채를 사는 경우도 있는데, 금리 레벨 측면도 있지만, 결국 전체 듀레이션 따라 맞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우리나라 국고채 듀레이션이 20년물과 30년물 발행 증가로 10년 정도 된다면 외국인도 평균 10년의 듀레이션이 되는 장기물을 가져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 본부장은 앞으로 주식시장의 외국인 비중과 같이 채권시장에서도 외국인이 30% 가까이 투자 비중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투자하는 채권 종류가 회사채 등으로 바르게 확대되기는 어렵지만 국채와 통안채를 중심으로 외국인들은 꾸준하게 매수 규모를 늘려갈 것이란 게 그의 예상이다.

그는 "일본이나 유럽(ECB) 등 아직 원화채권을 편입자산으로 삼지 않은 외국 중앙은행들도 있고, 글로벌 펀드의 경우에도 프랭클린 템플턴을 제외하고 큰 손들이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며 "이런 투자자들의 진입 가능성을 본다면 외국인의 원화채 보유잔고는 150조원까지도 무난히 갈 것"이라고 추정했다.

▲"무조건적인 롱 베팅은 시장에 대한 맹신" = 외국인이 앞으로 꾸준하게 원화채 비중을 늘려간다면, 채권금리 역시 계속해서 하락 기조를 이어갈까.

최 본부장은 "외국인이 150조원까지 원화채 자산규모를 늘린다고 해서 무조건 채권 롱 베팅에 나서는 것은 시장에 대한 지나친 맹신"이라고 단언했다.

또한 일부에서 제기하는 일본형 저금리 시대 도래에 대해서도 그는 다소 부정적인 입장이다.

그는 "인구구조 면에서는 고령화 흐름을 따라가겠지만 채권금리가 일본을 따라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국고10년물 기준 외환위기 당시 두 자리였던 금리 수준이 내려오고 있는데, 물론 다시 5%대를 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저금리라는 컨센서스는 5%대 불가라는 측면으로 생각되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국고10년물 기준 채권금리가 4% 중반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는 게 그의 예상이다.

그는 "잠재성장률 자체가 3% 후반대로 내려왔지만, 언제까지 내려갈 것으로 보긴 어렵다. 일본을 따라간다며 10년물 1%대로 '몰빵'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투자자들이 금리가 내려가면 돈을 벌겠지만, 금리 하락이면 결국 '캐피탈 로스(capital loss)'다."고 주장했다

채권에 대한 무조건적인 롱 베팅을 경계하는 것은 시장이 이미 과도하게 강세 흐름으로 쏠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 본부장은 "부동산이나 주식 등 마땅한 투자처가 없고 불황이다 보니 원금을 보존하는 채권으로 자금이 몰리고 있지만, 지금 채권자금은 분명히 쏠려 있다. 실물경제든 주식이든 긍정적인 영향을 받기 시작하면 금리는 자연스레 올라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가 채권시장의 쏠림현상을 단언하는 배경에는 증권사 등 단기투자기관들이 있다.

그는 "증권사들이 지금처럼 채권 듀레이션을 길게 가져간 적이 없다. 향후에 시장에 변동성을 줄 이벤트가 생기면 증권사와 같은 단기투자기관들이 거꾸로 엄청나게 매도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이전에 장기투자기관들이 들고 있던 장기물을 지금은 대부분 단기투자기관들이 가지고 있다. 이들의 실적이 좋아서 아무도 코멘트를 안 하지만, 상황이 바뀌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채권금리, 제한적으로 올라갈 것"= 당장 채권시장은 고요하다.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가 한풀 꺾였기 때문이다. 최 본부장은 내년 1분기까지 금리인하가 쉽지 않을 것으로 평가했다.

그는 "설사 금리인하를 하더라도 얼마나 내릴 수 있을까. 한은도 공격적으로 있다고 밝힌 만큼 적어도 내년 1분기까지는 금리인하가 어려울 것"이라며 "내년 하반기에 기준금리를 인상할지는 모르겠으나 큰 뷰가 형성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최 본부장은 이어 "국채선물 시장의 외국인이 매도를 하며 누적 순매수 규모를 줄이고 있고 미국 10년 국채금리도 1.7~1.8% 수준을 등락하고 있다. 많은 기관들이 미국 10년물이 2.4%까지 오를 가능성을 보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아래로 내려가는 게 한계가 있으면 가격은 위로 튀기 마련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물론 당장 국채 발행이 늘어날 가능성이 없고, 대선 등의 이유로 추경 가능성도 없어서 수급은 어느 정도 정해진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채권금리는 조금씩 대기 매수가 들어오는 와중에 매물 압력도 나오면서, 결국 제한적인 약세 흐름이 전개될 것이란 게 그의 예측이다.

채권금리의 제한적인 약세를 보는 배경은 국내외 경기의 바닥론에 대한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국내 경기가 여전히 '범핑로드'를 가겠지만, 올해보다는 내년이 더욱 좋아질 것이란 게 최 본부장의 관측이다.

그는 "미국 부동산시장을 보더라도 주택판매지표가 바닥권을 탈출하는 분위기를 보여주면서도 속도는 빠르지 않다"며 "우리 경기도 비슷한 경로를 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대외요인.."트레이더 '소신' 갖자" = 내년 경기와 시장 전망에 대해 누구도 섣불리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기 뷰에 대한 끊임없는 고찰과 한번 정해진 뷰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고 최 본부장은 주문한다.

그는 "우리나라 데이터뿐 아니라 미국과 호주 금리 등도 봐야 하고, 외국인 원화채 포지션이 커지니 당연히 그쪽도 모니터링해야한다. 이럴 때일수록 항상 되뇌는 것이 자기 자신이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본부장은 "소위 잘하는 딜러와 못하는 딜러가 될 확률은 엇비슷하다. 대부분 50~55%의 확률이다. 결국 수익을 올릴 때 자신의 뷰가 맞다면 베팅을 크게 하고 포지션을 크게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루 이틀 내에 결정되는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트레이더 자신의 뷰가 논리적으로 흔들리면 성공하기 힘들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도이치銀, FX데스크 강화= 최 본부장은 기존의 이자율 데스크뿐 아니라 외환 데스크(FX desk)도 총괄.관리하게 된다. 도이치은행은 이자율과 외환 데스크를 합쳐 박현남 본부장과 함께 최 본부장을 공동 헤드로 임명했다.

두 개의 공동 데스크 밑에는 채권을 비롯해 이자율스와프(IRS)와 통화스와프(CRS), 외환 스팟(FX spot), 외환 선물(FX forward), 외환 옵션(FX option), 머니마켓 등으로 역할이 구분되며 총 8명의 트레이더가 포함돼 있다.

최 본부장은 "내년 외환 트레이딩을 강화하기 위해 몇 가지 방안 등을 마련하고 있다"며 "특히 CRS를 IRS와 따로 분리해 강화함으로써 늘어나는 수출업체들과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투자에 대한 헤지 수요를 충족시키려 노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ywk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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