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고유권 기자 = 올해를 일주일 여 앞두고 한국가스공사의 입이 바짝 타 들어가고 있다.

올해 상반기 말까지 쌓인 5조4천억원에 달하는 미수금을 기초자산으로 유동화증권을 발행하려던 계획이 틀어졌기 때문이다.

올해 말까지 부채비율을 400% 이하로 낮추려던 가스공사의 목표는 결국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가 돼 가고 있다.

앞으로 매년 3조원 가까운 해외 자원개발 투자에 나설 예정인 가스공사는 부채비율 '악몽' 여파로 자금 조달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수금 회계처리 회계기준원 결론 내년 초로 연기 = 지난 12일 회계기준원은 가스공사의 미수금 회계처리 문제와 관련해 'IFRS(국제회계기준) 질의회신 연석회의'를 가졌다.

'IFRS 질의회신 연석회의'는 한국채택 국제회계기준에 대한 질의서를 검토하고 회신안을 심의ㆍ결정하는 회계기준원 내 조직으로 금융감독원, 회계기준원, 학계, 회계업계, 기업, 금융기관 등의 전문가로 구성된다.

연석회의가 열린 것은 가스공사의 미수금 성격을 둘러싸고 해석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스공사는 미수금이 확정매출채권으로서 장부상에 자산으로 기입된 금융자산으로 회계감사인도 이미 인정한 사안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가스공사는 현재 6조원에 육박하는 미수금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정부가 물가안정을 이유로 도시가스요금 원료비 연동제를 유보한 탓이다.

정부 정책에 따라 원료비 상승분을 공급가격에 반영하지 못하면서 가스공사의 손실이 커진셈이다.

가스공사는 정부 정책에 부응한 결과로 미수금이 늘어난 것이고 언젠가는 보전받을 수 있는 만큼 이를 손실 처리하지 않고 자산으로 장부에 기입해 왔다.

회계감사인들이 이를 문제 삼지 않은 것도 가스공사의 논리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가스공사가 미수금을 금융자산으로 주장하는 것은 유동화를 통해 미수금을 장부에서 털어내고(북오프, Book-off) 부채비율(연결)을 400% 이하로 낮추기 위해서다.

올해 상반기 말 기준 가스공사의 부채비율은 349.3%. 미수금을 장부에서 털어내지 않으면 3분기 말에는 370%를 넘어서고, 연말 결산 뒤에는 400%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은 가스공사의 미수금을 무형자산으로 해석하고 있다. 언제, 어떤 식으로 회수될 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는 이유에서다.

금감원의 해석에도 불구하고 가스공사가 유동화증권 발행을 결정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회계 처리의 문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스공사는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북오프가 필수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지난 12일 연석회의에서는 4대3의 결과로 가스공사의 주장이 힘을 얻었지만 금감원이 '비토권'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석회의 결과를 인정하기 어려워 상급 회의에서 논의를 더 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게 금감원의 판단이다.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금감원과 회계기준원 뿐이다.

결국 최종 결론은 상급 회의인 회계기준위원회에서 결정하게 됐다. 회계기준위원회는 회계기준원장, 회계기준원 상임위원과 5인의 비상임위원으로 구성된다.

올해 마지막 회계기준위원회는 오는 28일 열린다. 그러나 가스공사의 미수금 회계처리 관련 문제는 안건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내년 초로 미뤄졌다.

오는 26일을 유동화증권 발행 D데이로 계획했던 가스공사는 일정이 어그러지면서 충격에 휩싸였다.



◇가스公, '발행할까 말까' 고민 깊어간다 = 회계기준원의 결정에 따라 가스공사가 추진해 온 미수금 유동화증권의 연내 발행은 물건너 갈 수도 있게 됐다.

유동화증권을 발행하더라도 연말 결산시 회계적으로 미수금을 확정매출채권 금융자산으로 인정받기 어려워졌고 그에 따라 북오프 가능성도 낮아진 탓이다.

하지만 가스공사는 아직까지 유동화증권 발행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24일 "상황이 상당히 어려워졌다"면서도 "발행 여부를 어떻게 할 지 내부적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스공사가 여전히 유동화증권 연내 발행에 미련을 두고 있는 것은 발행하지 않았을 때의 파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당장 부채비율 400%를 넘기면 도시가스사업법상 사업면허 취소 가능성이 있고, 국제 신용평가사로부터의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도 높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지난 14일 가스공사의 신용등급을 'A+'로 유지하면서도, 독자신용등급은 'bbb-'에서 'bb+'로 하향 조정했다.

본 등급마저 내리게 된다면 가스공사는 그동안 발행했던 일부 외화표시채권의 조기상환 압박을 받을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일단 예정대로 유동화증권을 발행하고 회계처리 문제는 내년 초에 예정된 회계기준위원회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 논리를 만들어 대응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일종의 '선발행, 후조치'인 셈이다. 회계기준원에서 최종적으로 미수금을 확정매출채권 금융자산이라는 결론을 낸다면 연말 결산을 완료하는 내년 1∼2월까지는 북오프를 통한 부채비율 낮추기 등의 재무개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문제는 회계처리 문제가 발목을 잡으면서 투자를 하겠다고 나섰던 일부 금융기관들이 슬슬 발을 빼고 있다는 것이다.

가스공사는 매칭형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2조7천900억원, 은행 매입약정 ABCP 1조1천억원을 발행하고, 미수금을 담보로 7천억원의 자산담보부대출(ABL)을 실행하는 등 총 5조2천200억원의 유동화증권을 발행할 예정이다.

매칭형 ABCP의 경우 수요조사 결과 4조원에 달하는 수요가 몰릴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은행 매입약정 ABCP는 외환은행과 우리은행이 참여키로 했고, 7천억원의 ABL은 삼성생명과 교보생명, 새마을금고 등 대표적인 장기 투자기관들이 대거 참여하기로 한 상태다.

그러나 회계처리 이슈가 불거지면서 일부 은행 등 금융기관의 내부투자심의위원회에서 투자승인을 보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유동화증권의 금리 조건 등이 좋아 투자에 나서려고 했던 금융기관들이 회계처리 이슈를 '불확실한 리스크'로 인식한 탓이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미수금 유동화는 가스요금 인상 없이도 재무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회계처리 문제로 어려움을 겪게 돼 매우 난감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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