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최진우 기자 = 대우일렉트로닉스가 드디어 동부그룹에 팔리게 됐다.

대우일렉 매각은 국내 M&A 역사에 하나의 중요 사례로 연구될 정도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대우일렉(당시 대우전자)은 지난 1999년 8월 IMF여파를 이기지 못해 대우그룹 12개 계열사와 함께 워크아웃으로 지정됐다.

이듬해 워크아웃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뒤 반도체와 방위산업 부문과 반도체, 무선중계기, 신사옥 등 비주력 사업 매각을 매각했다.

사업구조를 TV와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으로 단순화했다.

2002년 새로운 꿈을 안고 대우일렉트로닉스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탈바꿈했다.

이후 백색가전 통합 브랜드 '클라쎄(Klasse)'를 발표한 뒤 서서히 재기에 나섰다.

1990년대 중반 '탱크주의'를 내세워 가전제품시장 점유율 30%를 차지했던 대우전자를 영광을 다시금 살리려고 한 것이다.

대표 브랜드를 내놓는 등 가전 부문에서 안정적 지위를 보유하자 대우일렉 채권단은 2005년 10월에 매각 결의를 실시했다.

해를 넘긴 4월 인수의향서를 접수한 뒤 5개월 후 인도 비디오콘-리플우드 컨소시엄이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첫단추는 잘못 채워졌다.

양측은 기술유출과 헐값매각 논란 속에서 MOU를 맺은데 이어, 우발채무 등을 들어 가격을 크게 깎으려는 원매자의 요구에 매각이 결렬됐다.

대우일렉은 다시 한 번 몸을 줄였다.

1천500명의 인력을 감원했고 카오디오(IS) 사업부도 매각했다.

몸집을 줄여 가격을 낮춘 만큼 채권단은 2007년 11월 재매각 공고를 냈고 모건스탠리 프라이빗에쿼티(PE)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그렇지만 인천공장 매각 등 구조조정안에 대해 대우일렉 노조가 반대하면서 모건스탠리PE는 인수의사를 철회했다.

이어 차순위협상자로 리플우드를 선정했지만 역시 매각을 실패로 돌아갔다.

대우일렉은 몸집을 한 번 더 줄였다. 세 번째다.

에어컨 부문을 귀뚜라미에 팔고 1천200명의 직원을 또 감축했다.

1990년대 말 1만2천명에 이르던 직원수는 1천400~1천500명 수준으로 크게 줄어들게 된다.

오로지 냉장고와 세탁기, 주방기기 중심의 백색가전만 다루겠다는 의지도 이때 표명했다.

눈물의 다이어트 끝에 채권단은 2009년 매각공고를 다시 냈고 중동계 엔텍합 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그해 11월 본계약까지 체결하면서 워크아웃 종료라는 '희망'이 싹텄다.

하지만 엔텍합은 자금조달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하면서 원점으로 돌아갔다.

채권단은 고민 뒤 덩치를 다시 한 번 줄이기로 했다.

대우일렉이 보유하고 있던 인천공장부지를 따로 떼 가격을 '팍' 낮추기로 한 것이다.

이에 약 5천억~6천억원 수준이었던 대우일렉은 3천억원 수준까지 가격이 낮아지게 된다.

대우일렉은 지난해 4월 다시 매각대상에 올랐고 결국 2천726억원에 동부그룹에 인수되며 새 국면을 맞게 됐다.

동부가 내달 8일까지 자금납입을 완료한다면 '13년 워크아웃'이라는 꼬리표를 완전히 떼게 된다.

대우일렉은 6개의 생산법인과 29개의 판매법인ㆍ지사를 보유하고 있다. 글로벌 영업망을 바탕으로 수출 비중이 80%에 달한다. 매출은 지난해 기준 1조9천억원을 거뒀다.

특히 베트남 시장에서 냉장고, 베네주엘라에서는 전자렌지, 알제리에서 드럼세탁기 부문에서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대우일렉 관계자는 "활발한 제3세계 시장에 진출한 것과 현지 특화 가전을 출시한 점, 국내 시장에 혁신 제품을 공략한 점이 매출 증가의 요인"이라고 밝혔다.

그는 "동부가 연구ㆍ개발(R&D)를 비롯해 투자는 확실하게 지원한다고 했다"면서 "워크아웃 13년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jwcho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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