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고유권 기자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중소기업 대통령'을 자처하면서 새 정부 경제 정책의 중심에 중소기업이 핵심으로 부상하자 정책금융기관들이 일제히 지원성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

당선인의 핵심 공약에 대한 코드 맞추기로 풀이되지만 이면에는 정책금융기관의 재편 움직임과 맞물려 조직을 사수하기 위한 행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정책금융기관들이 최근 중소기업을 지원하겠다고 내놓은 정책들은 대부분이 금융지원을 강화하겠다는 내용들이다.

대표적인 정책금융기관인 정책금융공사는 올해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자금 공급액을 7조6천억원으로 확정했다.

이는 올해 공사가 목표로 하고 있는 전체 공급 금액의 62%에 해당하는 것으로 중소기업 지원에 사실상 '올인'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특히 대표 상품인 온렌딩(시중금융기관을 통한 간접대출)을 통해 5조5천억원을 중소ㆍ중견기업에 공급할 예정인데, 이 가운데 80% 이상은 중소기업에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공사는 지난 7일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대기업 보다 어려운 금융환경에 놓인 지방의 중소ㆍ중견기업을 도우려고 1천억원의 특별자금을 지원하겠다는 방안도 내놨다.

진영욱 공사 사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경기침체로 금융지원이 감소할 때 더 큰 우산을 씌워줘 중소ㆍ중견기업에 꼭 필요한 정책금융기관이 될 수 있도록 주도적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수출입은행은 아예 조직개편을 통해 중소ㆍ중견기업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수출 중소ㆍ중견기업의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기업성장지원단을 신설하겠다는 것으로 부행장이 책임자인 지원단 밑에 상생금융실과 히든챔피언사업실, 중소ㆍ중견기업금융부를 배속해 다각도의 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김용환 수출입은행장은 "중소ㆍ중견기업에 대한 지원이 긴급하다는 판단에서 이번 조직개편의 주안점을 중소ㆍ중견기업 지원과 상생 발전에 뒀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무역보험공사와 신용보증기금 등도 금융지원 대열에서 빠지지 않았다.

무역보험공사는 올해 중소ㆍ중견기업에 대한 지원을 전년보다 21% 늘린 35조원을 집행하겠다고 했고, 신보는 자금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의 도산 등을 막기 위해 올해 10조원 규모로 매출채권보험을 인수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의 7조원에 비해 43% 급증한 규모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대주주가 정부인 우리은행도 중소기업 살리기 지원 경쟁에 발을 담그고 있다.

산은은 지난해 말로 시한이 만료된 중소ㆍ중견기업 특별저금리 대출을 내달 말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당초 3조원으로 운용하려던 계획을 2조원 더 늘려 5조원으로 확대했다.

우리은행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위한 금융지원에 8조2천억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와 같이 중소ㆍ중견기업에 대한 금융지원 방안이 연일 쏟아지고 있는 것에 대해 한 정책금융기관의 관계자는 10일 "새 정부의 정책 방향이 될 당선인의 핵심 경제 공약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으로 보면 된다"면서도 "코드 맞추기를 통해 자사 조직을 더욱 부각시키려는 측면이 있다고 굳이 부인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금융 사이드의 정부조직 개편과 맞물려 정책금융기관들의 재편도 잇따를 것으로 예상되면서 최대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중소기업 지원을 고리로 경쟁에 나서고 있다는 얘기다.

아직 인수위 단계에서 정부조직 개편과 관련한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지 않고 있는데다 정책금융기관들 사이의 헤쳐모여가 어떤 식으로 진행될 지 가늠이 안되면서 이러한 경쟁은 더욱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산은 민영화 파기와 정책금융공사와의 합병 ▲산은 민영화를 전제로 한 정책금융공사와 수출입은행의 합병 ▲정책금융공사를 지주회사로 하고 산하에 모든 정책금융기관을 두는 방안 ▲선박금융공사의 설립을 위해 수출입은행의 일부 기능을 이전 ▲신보와 기보 등 보증기관 재편 등 정책금융기관들의 기능과 구조개편과 관련한 시나리오는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다른 정책금융기관의 한 관계자는 "각 기관 사이의 수싸움은 벌써 시작됐다"면서도 "경제 정책을 집행하는 축인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의 역할 분담과 중소기업 관련 부처 신설 여부 등에 따라 윤곽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책금융기관들의 최근 행보에 대한 시선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한 중견기업의 관계자는 "금융지원에 나서겠다는데 마다할 기업은 없다"면서도 "캠페인성 지원인 경우가 많을 것으로 보이고 평소에도 그런 열정을 보여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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