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오바마 2기 행정부의 경제사령탑에 제이컵 루 백악관 비서실장이 낙점됐다. 루 내정자는 워싱턴에서 30년 경력 대부분을 보낸 재정전문가다. 작년 연말 공화당과 재정절벽 협상에서 곤욕을 치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정통인 그를 인선한 배경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당면한 과제는 2월 말까지 국가채무한도 조정 등 이른바 '재정절벽 2'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번 인선은 향후 미국의 국정철학과 경제정책 운용과 관련해 많은 시사점을 준다. 금융위기 복구에 초점을 맞췄던 1기 행정부와 달리 2기는 재정안정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공화당 인사를 국방장관에 앉히고 민주당 대선 경선 경쟁자인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으로 임명했던 1기의 탕평 인사와 달리 2기 정부에서는 철저하게 이너서클 중심으로 갈 것으로 관측된다. 자신와 호흡이 잘 맞는 사람을 뽑아 국정의 드라이브를 거는데 주력할 것으로 점쳐진다. 다음 대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는 만큼 오바마의 고집도 자주 보게 될 것 같다.



◆단체로 물 먹은 월가 = 루 지명자는 전임자인 티머시 가이트너와 여러 면에서 비교를 받는다. 금융통인 가이트너는 부시 행정부 시절 뉴욕연방은행 총재를 지낸 인연으로 親월가 성향을 갖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가이트너는 뉴욕연방은행 건물 10층 회의실에 월가의 내로라 하는 은행 경영자들을 모아놓고 대책을 숙의했었다. 재무장관으로 영전한 이후에도 월가의 주요 인사들과 주기적으로 만나며 그들의 의견을 청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정통인 루는 워싱턴에서 경력을 쌓은 탓에 월가에는 낯선 인물이다. 루가 뉴욕에서 경험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뉴욕시 퀸즈 출신이며 뉴욕대학교 최고운영책임자(COO)와 씨티그룹 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월가의 중심세력과는 거리가 있다. 그와 친밀한 관계를 맺은 월스트리트맨도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親월가. 親기업 인물이 재무장관을 맡았던 전례와 달리 워싱턴 출신의 재정.세제통 재무장관이 낙점된 것은 월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월가는 긴장의 끈을 바짝 조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루 지명자는 부자증세 등 오바마의 경제철학을 실천한 최측근이기 때문이다. 2006년 골드만삭스 출신의 헨리 폴슨 재무장관이 취임한 이후 7년간 경제사령탑과 맺었던 밀월관계는 단절될 위기에 처했다. 오바마와 끈이 닿는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가 재무장관에 오르지 못한 건 월가에 큰 아쉬움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위안이라면 루 내정자가 월가의 규제 강화를 찬성하는 인물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지난 2010년 오바마행정부 입각 당시 인준청문회에서 "월가에 대한 규제를 완화한 것이 금융위기의 주된 이유는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



◆공화당에서도 기피하는 싸움닭 = 오바마 대통령이 루를 재무장관에 낙점한 것은 그가 재정에 밝은 인물이기도 하지만 싸움닭 기질을 갖고 있다는 면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그가 지난 2011월 재정지출 삭감과 관련해 공화당과 협상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공화당측에서 서민용 의료보험인 메디케이드 비용을 삭감하자는 제안을 했으나 그는 협상 의제가 아니라며 단박에 거절하고 전화 끊었다. 그보다 6개월 앞선 민주-공화당의 정부지출 협상 때에는 평소 침착한 성격과 달리 협상장에 직접 뛰어들어가 협상의 베이스라인(출발선)을 주지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아울러 그는 1983년 팁 오닐 하원의장(민주당) 보좌관으로 일할 당시 사회보장 연금 파산을 막기 위한 협상에 참여해 공화당과 치열한 싸움을 벌인 경험도 있다.

루 내정자와 예산문제를 협의한 경험이 있는 주드 그레그 전 공화당 상원 의원은 그에 대해 "협상하기에 매우 까다로운 인물(tough guy to negotiate)"이라고 평했다.

이런 전력 때문에 그는 공화당에서 기피인물로 꼽힌다. 재무장관 인준 청문회에서 난항을 예고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공화당은 호락호락하게 그의 인준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밝힌다. 공화당에서는 대략 두 가지 쟁점을 준비하고 있다.

공화당은 우선 재정적자 감축과 관련한 구체적인 계획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정지출은 어느 부분을 줄일 것인지, 국가부채 증가를 억제할 대안은 있는지, 재정안정을 위한 개혁 프로그램은 있는지 등 꼼꼼히 따질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쟁점은 그의 유일한 월스트리트 경력인 씨티그룹에서 남긴 오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2006년부터 3년간 씨티그룹의 대안투자(AI) 부서와 웰스매니지먼트(WM) 부서를 관리했다. 공화당이 문제 삼는 부분은 대안투자(주식.채권이 아닌 원유.부동산.농산물 등 실물자산에 투자하는 것) 부서에서 금융위기가 한창일 때 집값 하락에 베팅하는 투자를 한 점이다. 나라 경제를 파국으로 몰고 간 부동산 시장 붕괴에 책임 있는 인물이 공직을 맡는다는 건 부적절하다는 논리다. 이 부분은 2010년 오바마 행정부에 들어갈 때에도 내부에서 문제가 됐던 부분이다.

그가 관리한 대안투자 부서는 2008년에 수십억달러의 손실을 봤다. 2008년 1분기에만 5억달러의 손실을 입었고, 조직개편 이후 대안투자팀을 인수한 팀의 2008년 손실은 총 201억달러(21조원)였다.

그는 이 부서를 관리하면서 110만달러(11억원)의 연봉을 받았고 일부 공개되지 않은 보너스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씨티그룹에서의 부적절한 투자와 관련해 그의 주변 사람들은 "당시 루는 투자전략을 짜는 역할을 하지 않았고 전체적인 부서 운영만 맡았을 뿐"이라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국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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