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지난 14일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금융포럼은 글로벌 환율전쟁의 축소판이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선진국의 양적 완화 조치가 거품을 키울 수 있다"며 일본의 엔저 정책을 비판했다. 이어 연설자로 나선 나가오 다케히코(中尾武彦) 재무관(차관급)은 최근 엔화 약세가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며 예봉을 피해 나갔다.

그는 "최근 엔화 약세는 그동안 많이 오른 데 대한 반작용으로 조정을 받는 것이지 일본 새 정부가 환율 절하 의도를 가진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중심으로 대내적으로 강력한 엔저 정책을 부르짖는 일본이 대외 행사에서 환율 절하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는 것은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한 제스처로 분석된다. 한국 등 주변국은 물론 미국과 유럽까지 일본의 환율을 문제 삼고 나섰기 때문이다. 특히 제임스 불라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총재가 지난 10일 일본의 근린궁핍화 정책을 들먹이며 엔저 정책의 위험을 경고한 것은 일본 당국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유럽도 일본의 환율정책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일본의 정책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장 클로드 융커 유로그룹 의장은 유로화 가치가 지나치게 높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일본 외환 당국에서 엔저 속도조절론을 제기하고 나선 것도 국제사회의 비판과 무관치 않다. 국제사회의 표적이 되면 여러 가지 불편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이 막 시작된 엔저 정책을 중단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환율정책의 첨병 역할을 하는 일본은행(BOJ)은 21~22일 열리는 통화정책 회의에서 엔저를 위한 추가 대책을 발표할 것으로 관측된다. 아베 총리에게 군기가 바짝 잡힌 시라카와 마사아키 총재는 지난 15일 강력한 통화완화를 추구할 것이라고 밝히며 추가 완화정책을 예고했다.

이번 회의에서 또 다른 관심 사항은 BOJ가 2% 물가목표치 도입을 명시하느냐다. 재무상과 경제재정상, BOJ 총재는 지난주 3자 회동에서 2% 물가목표치 도입과 관련한 의견을 교환했다. BOJ의 통화정책 발표 이후 3자 회동의 결과물을 담은 공동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 성명에 2% 물가목표치가 도입되면 일본은 사실상 '무제한 돈풀기 모드'에 들어서게 된다.

외부의 압력에도 꿋꿋하게 제 갈 길을 가고, 정부가 중앙은행을 끌어들여 적극적인 환율정책을 펴는 일본의 모습은 우리를 포함한 주변국가를 긴장시키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부와 중앙은행의 담벼락은 허물어졌다. 미국과 일본, 유럽 등 많은 선진국들은 경제살리기를 이유로 중앙은행을 동원하고 있다. 정권교체기에 우리 정책 당국도 어떻게 대응해야할지에 대해 지혜를 모아야할 때다.

총성 없는 환율 전쟁터에서 패전은 곧 총제적 경제 퇴행을 의미한다. 최근 글로벌 헤지펀드들은 '원고 엔저'의 흐름을 이용해 닛케이225지수에 롱포지션을 만들고 코스피지수에 숏포지션을 만드는 차익거래를 한다고 한다. 도요타 주가는 작년 10월 이후 36%나 올랐고 현대차 주가는 16% 하락했다. 이러한 흐름은 기업의 실적과 나라 경제의 성적표에도 곧바로 반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때를 놓치면 후회하는 일만 남는다. 우리 새 정부도 어느 때보다 환율에 집중해야할 때인 것 같다.

(국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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