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외환시장을 총성 없는 전쟁터라고 부르는 이유는 뭘까.

수급(需給)이라는 시장 메커니즘에 의해 움직이는 가격(Price) 변수인 환율시장에 각국 정부가 자국 이익을 위해 인위적으로 개입하면서 죽고 살기씩 혈투를 벌이기 때문이다.

두 화폐 간 교환비율이 변하면 양국의 무역과 자본흐름이 바뀌고, 수출입, 기업실적, 경기, 물가, 통화량, 투자와 임금, 일자리까지 전방위로 흔들린다. 삶의 기반인 경제 여건이 변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생존권도 빼앗긴다. 아무리 성실하게 열심히 물건을 만들고 혁신하고 부가가치와 서비스를 창출해도, 환율 한방으로 개방체제하에서는 모든 게 말짱 도루묵이 된다. 대포와 폭격기가 없이도 환율을 통해 상대국가에 직접 타격이 가능해지자 각국 정부가 이 전쟁에 사활을 걸고 있다.

각국의 목표 환율선 설정과 방어는 군사작전과 같다. 정부와 중앙은행의 공격 명령이 떨어지면 목표선까지 인정 사정없이 진군하고 심리전, 성명전도 불사한다. 천문학적 개입 비용이 들기도 하지만 전쟁에서 일단 승기를 잡으면 치른 기회비용을 넘어서는 천문학적인 경제 이익을 향유한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통화 패권이 이완된 틈을 타, 유럽과 일본이 각자 도생(各自圖生)의 길을 걸으면서 글로벌 외환시장은 유례없이 국지전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의 매파들이 잃어버린 20년을 되찾으려고 달러당 100엔선을 탈환해야 한다고 서슴없이 주장하고 재무상, 일본은행 총재, 경제재정상이 엔화 약세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2008년 금융 이후 미국과 유럽이 경기부양을 명목으로 국제유동성을 폭발적으로 증가하더니 일본까지 가담해 우리를 전방위로 위협하는 상황이다.

전체 상황을 우리 뜻대로 통제할 수는 없더라도 이럴 때일수록 우리 외환당국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유념해야 할 것은 '국가 전체 이익'을 위한 치밀한 계산이 필요하고 이후, 행동에서는 전쟁에 임하는 자세로 일사불란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직도 우리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가 밀실에서 정책 결정된 탓이라는 트라우마가 워낙 강해, 환율 정책을 국회가 논쟁 대상으로 삼고 시민단체, 경제학자들까지 나서서 비판하는 실정이다.

미국과 유럽 일본처럼, 환율정책만큼은 고도로 전문적이고 실시간 판단을 해야 하는 영역이라는 점을 존중해 의회와 언론도 비판을 자제하는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 같다.

우리 외환당국자들은 전쟁을 수행하는 지휘관과 일선 지휘자처럼, 정권이 바뀌는 어수선한 시간일지라도 눈치 살피지 말고 소신껏 정책을 수행해 위기관리에 흔들림 없이 임해주기를 기대한다.

(취재본부장/이사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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