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ㆍ저금리 시대를 맞아 은행권에서는 절약이 화두다. 시중은행장들은 신년사와 연초 인터뷰에서 줄지어 비용 절감을 강조했다.

그러나 절약 캠페인에 불이 붙으며 일부 은행에서는 이상한 풍경도 벌어지고 있다. 캠페인이 형식에 치우치면서 일부 은행이 '절약하는 것처럼' 보이는 데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한 대형 시중은행에 근무하는 A차장은 최근 업무보고를 할 때마다 보고와 관계없는 내용을 출력한다. 이후 종이를 뒤집어 보고 내용을 출력하고서 결재 서류철에 끼운다. 행내에서 비용 절감을 위한 이면지 사용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A차장은 "이면지에 보고하지 않으면 질책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며 "캠페인이 고지식하게 운영되면서 이면지가 없을 때는 억지로 만들어내야 하는 부작용이 벌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출력용지를 절약하겠다는 캠페인의 취지를 살리려면 이면지 활용을 권장하기보다는 보고를 구두로 하거나 전자우편 등을 활용하게 하는 방식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B은행은 겨울인데도 한낮에는 에어컨을 켜곤 한다. 대형건물을 대상으로 난방온도 20도 이하를 유지해야 하는 실내온도 단속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B은행은 외벽 창문 면적이 넓어 해가 드는 낮에는 실내온도가 급격히 올라간다. 특히 각종 단말기가 운집한 딜링룸은 30도 가까이 상승하기 일쑤다.

B은행 관계자는 "단속에 대비해 에어컨을 켜도 워낙 온도가 높아 잘 내려가지 않는다"며 "에어컨을 틀어가면서까지 실내온도를 맞춰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절약 캠페인이 이처럼 취지와 다른 방향으로 흐르면서 저비용ㆍ고효율 구조로 불황을 타개하겠다는 당초 각오가 무색해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은행권 관계자는 "절약 캠페인 때문에 오히려 낭비가 발생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형식에 치우친 캠페인보다는 실제로 비용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고 지적했다.(산업증권부 이미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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