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창 기자 = 곳간에 현금을 쌓아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예상대로 인수합병(M&A)에 나서고 있지만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은 업계의 합종연횡에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오히려 지난해 현대건설과 녹십자생명보험 인수 등 전혀 동떨어진 행보를 나타냈다.

분기마다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는 상황에서 M&A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는걸까.

9일 완성차 업계와 IB 업계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글로벌 경쟁업체보다 부족한 현금, 완전히 구축하지 못한 고급차 브랜드 이미지 등을 이유로 꼽았다.

폴크스바겐은 이달 초 고급 스포츠카 브랜드인 포르셰의 지분 50.1%를 인수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미 포르셰 지분 49.9%를 확보한 폴크스바겐은 잔여 지분 인수에 44억6천만유로(약 6조3천50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올해 3월 말 연결 기준 폴크스바겐의 현금·단기유가증권은 36조7천474억원. 이번 M&A로 큰 출혈은 없다.

이런 폴크스바겐보다 쓸 돈이 더 많은 완성차 업체가 더 있다.

포드의 현금·단기유가증권은 무려 41조4천438억원, 도요타는 40조3천708억원에 이른다. 제너럴모터스(GM)도 36조9천96억원을 보유 중이다.

이에 비해 현대차는 17조2천32억원, 기아차는 4조6천34억원에 불과하다. 다른 완성차 업체를 인수하려면 큰 출혈을 감수해야 한다. 현대차와 비슷한 수준은 혼다(17조1천728억원) 정도다.

완성차 업계 일각에서는 현대차그룹이 단순히 자금 때문에 다른 완성차 업체를 인수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지난 5월 러시아의 최대 자동차 업체인 아브토바즈 지분을 추가로 인수한다고 밝힌 닛산-르노 연합의 현금·단기유가증권 합계는 27조원 수준이다. 닛산이 11조5천721억원, 르노가 15조3천774억원이다.

이미 아브토바즈 주식을 25% 보유한 닛산-르노는 추가 인수를 위해 오는 2014년까지 약 7억5천만달러(약 8천500억원)를 투입할 예정이다.

따라서 현대차그룹도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M&A에 나설 수 있다.

굳이 M&A가 아닌 다른 방법도 있다. 도요타와 BMW가 지난달 말 공동으로 스포츠카 개발에 나선다고 선언했고, 이미 도요타는 미국 포드와, BMW는 푸조시트로엥과 하이브리드차 등에서 기술제휴에 돌입했다.

따라서 완성차업계의 일부 관계자들은 '실탄 부족'보다는 '브랜드 이미지'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만약 현대차가 포르셰를 인수했을 경우를 가정해보자. 포르셰 고객층이 망설임 없이 계속 사겠느냐"고 반문했다.

현대차그룹이 디자인과 내구성, 성능 면에서 호평을 받고 있고 고급차 라인업을 점차 강화하고 있으나 고급 브랜드 구축에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 관계자는 진단했다.

그렇다고 현대차그룹이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M&A로 업계 판도가 급속히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폴크스바겐은 지난해 도요타와 포드를 제치고 세계 2위의 자동차 메이커로 올라선 데 이어 포르셰 인수로 1위도 노려볼 수 있게 됐다. 또 닛산-르노가 아브토바즈를 인수하면 판매량 면에서 도요타를 제치고 세계 3위로 올라서게 된다.

IB 업계 관계자는 "M&A로 덩치를 키우는 방법이 사업 안정성 면에서 반드시 좋다고 볼 수는 없으나 자칫 현대차가 고립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선 합작사 설립 등을 통해 기술력을 키우고 유럽 재정위기를 기회로 삼아 M&A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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