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번 위기는 너무나 심각하고 위협적이어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모두 과소하게 대응하기보다는 과잉 대응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하는 등 최고의 이코노미스트로 꼽히는 스티븐 로치 전 모건스탠리 아시아 회장 등 경제전문가들이 한결같이 권고한 위기 대응의 원칙이다.

▲5년만에 다우 14,000 상향돌파도 과잉대응의 결과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인 연방기금금리(FFR) 2015년까지 제로 수준에서 동결할 것이라고 공언한 것도 모자라세 차례에 걸쳐 양적완화(QE3)를 실시한 것도 이런 원칙에 충실한 통화정책이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헬리콥터 벤' 이라는 비아냥을 감수하면서 유동성을 대량 공급한 덕분에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미국의 경제지표들이 일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양적완화 등으로 기업들의 실적이 좋아진덕분에 지난 1일 다우존스 30산업평균지수는 2007년 10월 이후 5년여 만에 처음으로 14,000선을 상향돌파했다. 다우지수는전장대비 149.21포인트(1.08%) 상승한 14,009.79에 거래를 마쳤다. 과잉대응의 결과물이다.

▲엔저에 싱글벙글 일본기업도 과잉대응 선물로 받아= 일본은행(BOJ)이 무기한 자산매입 정책을 발표하고 2%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수용한 것도 과소보다는 과잉대응이 낫다는 원칙에 충실한 행보다.BOJ가 아베 총리의 정치적 압박에 못이겨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포기한 굴종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일본 기업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BOJ의 과잉대응에 따른 결과물인엔화 약세로 기업들의 실적이 좋아졌다. 주식시장은 기업실적 호조를선반영하며 랠리를 펼치고 있다.니케이 225지수는 지난해 11월 중순부터 28% 올랐고 30일에는 33개월래 최고치로 마감했다.전자업종이 강세를 주도하고 있는데 소니, 파나소닉 주가는 2개월 만에 50% 이상 뛰었고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자동차업종 주가도 35% 넘게 올랐다.

▲의연한 한국은 과소대응의 오류 조심해야= 선진국 중앙은행이 안면몰수형 과잉대응에 나선 것과 대조적으로 한국은행(BOK)은 기준금리를 연 2.75%에 석달 연속 묶어 두면서 의연하게 대처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앞다퉈 과잉 대응하는 사이 점잖게 상황을 좀 더 지켜보자고 여유를 보인 셈이다.

이에 대해 일부 이코노미스트들은 남들이 과잉대응할 때 그 자리를 지키는이른바 스탠드스틸(stand-still)을 고수할 경우 오히려 과소대응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여유를 보여준 덕분에 소비자물가는 석달 연속 1%대를 기록했다. 물가 안정 수준을 넘어 수요부진의 단계를 의심할 지경이다. 통계청이 1일 발표한 '1월 소비자 물가 동향'을 보면 지난달 소비자 물가는 전년대비 1.5% 상승했다. 지난해 11월 상승률이 1.6%를 기록한 뒤 3개월째 1%대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석 달 연속 1%대를 지속한 것은 통계청이 집계를 시작한 2002년 이후 처음이고 한국은행의 2013~2015년 중기물가안정목표인 2.5~3.5%를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금통위도 과소대응보다는 과잉대응이 더 낫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국내외 경기부진으로 소비가 급격하게 침체되는 등 수요부진이 더 심각하기 전에 통화정책 측면에서의 과잉대응을 심각하게 고민할 것 같기도 하다. 만약 금통위가 과잉대응할 생각이 있다면 새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행동에 옮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새 정부 출범 이후에 행동에 나설 경우 또 한차례의 독립성 시비에 휩쓸릴 수 있다. 음정을 못맞춰도 음치 소리를 듣지만 박자를 못맞춰도 음치다.(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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