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런던에서 최고 잘 나가는 금융기관 임원 윌슨 씨. 그는 입사 이후 20년간 하루 15시간 일만 하다가 어느 해 마누라와 아이가 하도 졸라서 아프리카 휴가여행을 세웠다. 그러나 아뿔싸 이번에도 회사에 일이 터져 결국 부인과 자녀만 여행을 떠나게 됐다. 윌슨 씨의 아들은 여행 중에 길 안내를 맡은 아프리카 소년과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여행에 같이 못 온 너희 아빠는 뭐하시냐"(아프리카 소년). "IB의 임원인데 연봉 많이 받고 매우 바쁘~지"(유럽 소년). "너희 아빤 나중에 뭘하려고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시냐?". "우리 아빠는 미래에 잘 놀려고 현재 뼈 빠지게 일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지". "그래? 우리 아빤 예전부터 마을 숲 속에서 놀고 있는데, 너희 아빠 미래의 꿈이 현재의 우리 아빠가 되는 것이구나"

깨어 있는 시간 모두 돈 버는 일에만 매달린다면 문제다. 특히 금융인, 대기업 임원, 변호사, 회계사, 의사 등 경쟁이 치열한 자본주의에서 잘나가는 직업군이 그렇다. 특성상 돈은 좀 만질지 모르지만, 근력이 있는 청장년 동안은 돈 쓸 시간이 없는 '시간 가난뱅이'가 대부분이다.

자본주의에서 1%라고 불리는 이들도 나중에 늙어서 1박2일 근거리 여행도 못 떠나게 되는 건 다른 99% 부류의 처지와 마찬가지다. 장시간 비행기를 타기 어렵고 지팡이 짚고 걷기도 어려워진다. 그때 가서 돈이 다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한탄해도 때는 이미 늦다.

사람의 인생에서 모든 시기의 시간은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데, 유독 자본주의 한국에서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삶의 방식에 길들여 있는 것 같다.

일이란 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과정이다. 먹고 살려고 열심히 일한다 해도 현재 배우자를 소홀히 하고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지 못한다면 그는 스스로 느끼는 것보다 훨씬 가난한 사람이다.

자본주의에서의 생활이란 따지고 보면 좀 더 높은 소비와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보다 높은 자리에, 좀 더 많은 월급에 연연하며 결사적으로 더 일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퇴직 이후 노후에 먹고 살 걱정까지 얹혀지면서 부담과 중압감은 더 커진다.

막스 베버(Max Weber)는 자본주의 정신을 '경제적 합리주의, 세상적 금욕주의와 소명으로서의 직업의식과 노동'으로 정의했다. 노동의 목적은 자기중심적인 이윤축적이 아니며, 노동 자체에 대한 만족도 아니라 타인에 대한 유용성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청교도 윤리가 사라진 자본주의는 경쟁적 자본주의, 탐욕적 자본주의로 전락하게 됐다. 자본주의 생산체제에 참여하는 자체가 세속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 '철창'에 갇힌 상태로 삶을 생각하는 일, 삶의 모든 것이 자본주의 방식을 따른다고 추론하는 일, 극단적인 효율성에만 매달리게 하고, 지나치게 인간중심적이고 현세적인 쳇바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긴밀한 유대가 사라진 대신, 짧고 빨리 지나치는 단절된 관계에 몰두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의 유행어가 되는 자본주의 4.0 논쟁은 '양극화'와 '부의 분배'에만 초점이 집중되고 있는데, 이 체제가 가지는 인간 소외의 본질적 구조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아 아쉬운 부분이아닐수 없다.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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