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환율전쟁의 해법을 모색할 것으로 기대됐던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ㆍ중앙은행 총재 회의는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각국이 경쟁적인 통화절하를 자제하기로 합의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만 어느 정도 구속력이 있을지 의문시된다.

논리적 모순도 문제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의 경기부양을 위한 돈 찍어내기엔 찬성하면서 그 부산물인 통화절하를 자제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작년 말부터 시작된 일본의 공격적인 엔저 정책을 국제사회가 제지하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환율전쟁을 유발한 '일본'의 환율정책을 성명에 명기하느냐를 놓고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빠졌다. 우리의 수출경쟁상대인 일본의 엔저 정책은 '경기부양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부(富)의 90%를 차지한 20개 나라가 모여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G20 회의는 애초부터 한계가 있었다. 환율 문제를 놓고 선진국과 이머징마켓(개발도상국)의 이해는 극명히 엇갈렸다. 미국과 일본의 돈 풀기로 개발도상국이 피해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돈 풀기는 개도국으로 투기자본 유입을 부추겨 (개도국) 환율절상을 유발했고 일본의 돈 풀기는 수출 경쟁국인 한국 등 수출주도형 국가들에 타격을 입혔다. 환율전쟁은 제로섬 게임이다. 환율로 이익을 보는 나라가 있으면 반대편에 손해를 보는 나라가 반드시 생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나온 G20 성명은 아쉽게도 선진국의 입장을 더 반영했다. 이번 G20 성명은 그에 앞서 나온 주요7개국(G7) 성명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선진국의 모임인 G7이 지난 12일 발표한 성명은 ▲환율은 시장이 결정한다 ▲돈풀기는 국내 경제 회복을 위한 목적이지 환율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히 후자는 선진국들이 이번 회의를 앞두고 철저하게 무장하고 나온 논리다.

뒤집어 해석하면 이번 회의는 일본의 엔저 정책에 면죄부를 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일본은 엔저를 환율정책이 아니라 통화정책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경기를 살리려고 엔화를 시중에 푼 것이지 환율을 목적으로 한 게 아니라는 논리가 G20 성명에 먹혀들었다. 일본이 '환율'을 입에 올리지 않는 한 엔화를 찍어내는 양적완화 정책은 정당하다는 확인을 받은 셈이다.

환율전쟁의 원죄를 지은 미국은 그들을 똑같이 벤치마킹한 일본을 비판한 명분이 없다. 미국이 일본을 비판하면 스스로 자기모순에 빠지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과 일본은 한통속이 돼 (환율이 목적이 아닌) 경제살리기를 목적으로 한 돈 풀기는 세계 경제회복을 위해 필요하다는 논리를 들고 나왔고 이를 자신들의 이익을 지킬 명분으로 삼았다. 이러한 논리는 선진국 경제 컨트롤타워의 발언 곳곳에 녹아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일본의 정책은 경제성장을 부양하기 위한 것이기에 환영한다"고 말했고,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경기부양책을 이용해 선진국의 내수가 회복되면 모든 G20 회원국에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앞으로도 엔저 정책을 계속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입은 봉하고 정책으로 말하는 전략을 쓸 것으로 보인다. 바꿔 말하면 일본 정부당국자들은 G20 성명을 의식해 노골적인 환율 멘트를 하진 않으면서 엔화를 지속적으로 풀어 시장에 개입할 것으로 관측된다. (국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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