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권용욱 기자 = 한국은행이 최근 잇따라 재계에 쓴소리를 내뱉고 있다. 특히 지지부진한 가계 환류성 등으로 경제 양극화를 부추기는 것으로 지목되는 수출.제조업들이 그 대상이 되고 있다. 전일에는 'MB노믹스'의 근간으로 불리는 수출 기업 중심의 고환율 정책이 항상 옳을 수 없다는 내용의 보고서도 내놓았다.

시장 참가자들은 20일 중소기업 활성화를 최우선 과제로 두며 경제 민주화를 강조하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스탠스에 한은이 적극적으로 화답하는 차원으로 풀이했다. 국내 최고의 조사.연구 역량을 동원해 새 정부의 정책 기조에 맞는 다양한 백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는 뜻이다.

시장에서는 그동안 경제 관료들을 중심으로 굳건히 자리 잡은 수출.제조업 중심의 성장론에 과감히 '견제구'를 날리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한은의 행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한은의 이런 행보를 마뜩찮게 보는 시선도있다. 지나간 정권의 경제정책에 대해 뒤늦게 쓴소리를 내뱉고 새로운 정부의 정책 기조에 적극 화답하는 듯한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일부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선제적 조치를 주요 임무로 하는 중앙은행으로서 적절한 행보인지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은, 대기업 때리기 열중= 한은은 올해 들어 총 세 차례 'BOK 이슈노트'를 발간하며 기업들, 특히나 수출과 제조업 중심의 기업들의 역할론을 강조하는 동시에 수출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은은 먼저 지난 1월 '가계소득 현황 및 시사점'이란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 국민총소득(GNI)에서 가계가 가져가는 부분은 큰 폭으로 줄어든 반면, 기업 몫으로 분배되는 부분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최근 10년간 가계의 소득이 GNI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주요국 가운데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지는 등 주요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가계의 고통지수가 더 큰 것으로 조사됐다. 한은은 가계소득 증가세가 GNI보다 상대적으로 둔화된 것은 기업소득 증가율을 하회하는 임금 증가율 등 기업 이익의 가계 환류성이 약화됐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이달 초에는 가계의 지출 여력이 떨어지는 고령화 시대에는 저축을 꾸준히 늘려온 기업들의 지출 여력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는 진단이 한은에서 제기됐다. 생산 가능 인구 감소와 재정수지 악화 등으로 가계와 정부의 지출 여력이 줄어드는 만큼 기업들이 적극적인 투자로 자금을 풀어 가계 소득과 고용 안정성 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전일에는 국내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극복할 때 수출의 기여도가 크다는 인식은 과대평가됐다는 진단이 제기됐다. 보고서를 공동 집필한 정영택 경제통계국 부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수출의 중요성이 부각됐지만, 실제 경제 성장의 안전판 역할을 하는 것은 내수 부문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새로운 성장기여도 계산 방식인 수입조정법(IAM, Import Adjusted Method)을 활용해 분석한 결과, 외환위기(1998년)과 글로벌 금융위기(2009년) 등의 시기에 현행 방식에 의한 순수출 성장기여도는 각각 11.2%포인트와 3.7%포인트의 큰 폭 플러스를 나타났지만, 새 방식의 경우에는 각각 4.1%포인트와 0.8%포인트로 크게 하향 수정됐다.

▲고정관념 탈피는 긍정적 = 시장 참가자들은 한은이 보다 선진화된 연구방법을 도입해 그동안의 고정관념 등을 탈피할 수 있는 진단들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새로운 정권의 기조에 부합하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질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한은이 일부 선진국에서 사용되는 새로운 성장기여도 추정방식을 통해 '위기 직후에는 수출이 성장을 주도한다'는 인식에 대한 다른 관점을 내놓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고환율 정책으로 기업 중심의 수출이 증가하면 경제가 활성화되고, 고용이 증대되어 소비가 늘어난다는 경제선순환 구조를 강조한 현 정권을 견제하는 역할은 한은이 결국 하지 못한 꼴"이라며 "물러가는 정권 정책을 비판하고 새로 들어서는 정부의 정책 기조에 화답하는 보고서를 내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간경제연구소의 한 전문가는 "올해 들어 세 차례나 관련 보고서를 줄지어 내보냈다는 것은 이전에도 한은 내부적으로 해당 연구가 상당 부분 진행됐었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그는 "한은이 정부와 독립된 기구로서 정권 실세의 눈치를 보는 모양새보다는 국내 경제의 관성화된 논리들에 더욱 선제적으로 이견을 내놓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ywk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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