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창헌 기자 = 서울채권시장이 큰 혼란에 빠졌다. 한 외신을 통해 타진된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 탓이다. 외국인은 국채선물을 대규모로 팔고 나섰다. 그 여파로 국채선물은 장중 큰 폭으로 밀렸고, 국내 시장 참가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며 억울해하고 있다.

20일 오전 금융시장 개장 직후 미국계 B통신사가 김중수 총재와의 인터뷰 기사를 내보냈다.

제목만으로도 반향이 컸다. '김 총재 금리인하 불필요 시사(BOK’s Kim Signals No Rate Cut Needed)'의 자극적인 문구가 메신저 등으로 시장에 전달되자 참가자들은 진위 파악에 나섰다.

마침 오전에 김 총재가 주재하는 경제동향간담회가 있던 터라, 발언의 출처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혼선이 가중됐다.

그 사이 외국인은 즉각적으로 움직였다. 국채선물을 대량으로 팔기 시작했다. 외국인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에 국내 참가자들도 후속 대응에 나섰으나 이미 선물가격은 한참 내려간 뒤였다.

증권사 한 채권딜러는 "김 총재 발언이 해외 매체를 통해서만 전달됨에 따라 촌각을 다투는 시장에서 외국계가 국내 기관보다 발 빠르게 대응했다"고 주장했다.

금리정책 방향을 직접적으로 인용한 다분히 자극적인 제목과 달리 인터뷰 내용은 평이했다.

김 총재는 "올해 경제성장률이 2.8%를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며 "(성장률이) 예상을 밑돌 가능성보다는 상회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금리정책과 관련해 "기준금리를 인하하지 않을 이유도 없지만 인하할 이유도 없다"고 말했지만, 원론적인 수준의 발언으로 해석됐다.

그동안 공식 기자회견 등에서 김 총재가 언급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참가자들은 "외신의 '제목 낚시질'에 걸려들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도 김 총재의 외신 선호주의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이런 지적이 비단 시장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한은 안팎에서도 김 총재가 취임 이후 개별 언론사와는 인터뷰를 안 한다는 원칙을 세워 놓고 번번이 특정 외국 언론은 예외로 하는 것은 통화당국 수장으로서의 신뢰를 스스로 허무는 일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김 총재는 지난해에도 국내 언론을 배제하고 외신 몇 곳과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가 사대주의 성향이 지나친 것 아니냐는 안팎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동안 김 총재는 취임 이후 국내 언론과는 단 한 차례도 인터뷰를 한 적이 없다. 한은 출입 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도 김 총재 발언 대부분은 '오프 더 레코드'로 처리돼왔다. 김 총재 발언의 시장 영향이 워낙 크다는 점을 고려한 한은 측의 조치였다.

일부 금통위원도 외신 선호 성향이 엿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2월 금융통화위원회를 일주일여 앞두고 문우식 금통위원이 B통신사와 단독 인터뷰를 가진 것을 두고 하는 얘기다.

문 위원은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경기가 바닥을 치고 회복세에 들어섰다는 점에서 확장적 통화정책을 서두를 때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시장 참가자들은 문 위원이 기준금리 동결을 시사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채권시장 한 관계자는 "김 총재나 금통위원들이 외신과의 인터뷰를 선호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감을 국외로 더 많이 알리고 싶은 것 아니겠느냐"며 "정책 당국자들의 이런 일방향의 소통 방식이 금융시장의 정보 비대칭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스스로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ch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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