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치리스크가 국제금융시장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유럽에선 이탈리아 총선이 불안심리를 자극하고 미국에선 재정 문제의 정치적 갈등이 시장의 발목을 잡는다. 미국과 유럽은 세계 경제의 양대 엔진이다. 두 개의 엔진이 정치리스크 때문에 가동중단의 위기 놓였다.

이탈리아 총선과 미국의 재정문제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결과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탈리아 국민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당국이 요구하는 긴축을 선거로 거부했다. 이탈리아 위기 탈출을 지휘한 마리오 몬티 총리는 이번 선거로 심판을 받았고 유로존의 긴축을 비판하는 정당들이 부상했다. 심지어 부패의 상징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도 부활했다. 이탈리아 민심은 세 조각으로 찢어져 정부 구성마저 여의치 않은 무정부 상태에 빠졌다. 각종 금융지표는 이런 불안감을 실시간으로 반영한다. 정치의 비상식이 경제 위기를 다시 자극하는 셈이다.

이탈리아 총선을 계기로 유럽연합(EU) 내에서 친EU와 반EU 세력의 갈등이 다시 불거질 것으로 우려된다. 유럽의 긴축을 주도하는 독일에 대한 비판 여론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독일 정치권에서 이탈리아 총선 결과를 조롱하는 발언이 나와 反독일여론을 부채질햇다. 페어 슈타인브뤽 사민당 총리 후보는 지난달 26일 "어떻게 두 명의 광대가 승리할 수 있느냐"며 이탈리아를 비웃었고 조르조 나폴리티노 이탈리아 대통령은 27일로 잡혀있던 슈타인브뤽과의 저녁약속을 전격 취소했다.

미국 정치의 비상식은 시퀘스터(연방 예산 자동삭감) 협상에서 드러났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민주당)과 야당인 공화당은 '제2의 재정절벽'이라는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타협을 이뤄내지 못했다. 여야 정치권이 미국 재정과 경제를 볼모로 벼랑 끝 전술을 벌이다 경제를 정말로 낭떠러지로 몰고 있는 셈이다. 이 결과 3월 1일부터 2013년 회계연도 마감인 9월 말까지 자동 삭감된 연방 예산은 850억달러(약 92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앞으로 10년간 1조2천억달러의 예산도 자동삭감된다.

국가보다 당파 이익을 따지는 '정쟁'에 빠져 미국을 위기에 빠뜨린 미국 정치권의 무능한 모습은 과거에도 있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미국 의회는 금융권에 자금을 투입할 근거법인 구제금융 법안을 부결시켰다. 당시 뉴욕증시는 사상 최악의 폭락 사태를 맞았다. 이번 시퀘스터 사태에 뉴욕증시는 별로 반응하지 않았으나 미국 경제에 미칠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성장률은 최대 2%P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실업률은 8%를 다시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회복의 온기를 타던 미국 경제가 다시 얼음장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으로 우려된다.

미국과 유럽의 정치리스크는 남의 일이 아니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일본의 엔저 공세로 고통받는 가운데 수출시장인 미국과 유럽 경제까지 정치위험에 비틀거리면 우리 경제는 사면초가에 빠지게 된다. 우리 정치도 서구의 정치리스크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새 대통령이 취임했음에도 정상적인 국정운영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조직 개편안은 국회에서 공전하고 있고, 청와대와 야당은 양보없는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우리의 불안한 대외 경제ㆍ외교 상황을 고려할 때 정치권을 중심으로 온 국민의 단결이 절실히 필요하다.

일본은 경제부활을 목표로 뭉치고 있다. 이를 위해 일본은 미국에 착 달라붙어 국익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일본을 자기편으로 만들어 중국을 견제하고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경제 실리를 보장받는다. 미일 관계의 개선은 중국과 일본의 영토갈등에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역사 문제와 자원의 실리(實利)라는 기본 함수에 미국이라는 변수가 가세해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위안부 피해자 사과와 독도 문제로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북한은 핵무장으로 동북아 정세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동북아 지형이 급변하는 상황을 하루빨리 자각하고 국가 전체가 합심해 현명한 대응에 나서야 할 때다. (국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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