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장용욱 기자 = "지금이 진짜 위기다. 삼성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10년 안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이 사라질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2010년 3월 24일 경영복귀 소감 中)

"삼성의 위상이 높아질수록 견제는 심해질 것"이라며 "삼성의 앞길도 순탄치 않으며 험난하고 버거운 싸움이 계속될 것이다" (2013년 1월 2일 신년사 中)

지난 2008년 삼성 비자금 사건으로 물러났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오는 24일부로 경영일선에 복귀한 지 꼬박 3년을 맞는다.

이 회장 복귀 이후 삼성은 전사적인 긴장감이 높아지면서 대내외 위기에 민첩하게 대응했고, 그 결과 유럽발 재정위기와 미국의 경기침체 속에서도 홀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의 '위기론'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휴대전화 등 일부 사업에 지나치게 치우친 사업구조 때문에 미래 먹거리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또, 경제민주화 역풍 속에서 오너가의 유산 다툼과 연이어 터진 내부악재에 대한 싸늘한 여론도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다.

◇ '빨라진' 삼성…위기 속 '독보적 실적' = 이건희 회장은 경영일선에 복귀하자마자 미래전략실'이라는 이름으로 그룹의 컨트롤타워를 복원했다. 이를 통해 그룹 전반에 대한 강도 높은 경영진단을 시행해 임직원들의 긴장감을 높였다.

또, 지난 2011년 4월부터는 직접 서초동 본사로 출근해 현안을 직접 챙기면서 그룹 전반의 의사결정 속도가 몰라보게 빨라졌다.

인사 혁신도 진행돼 비위가 적발되거나 실적이 악화된 계열사에 대해서는 CEO급을 망라하고 수시로 문책성 인사를 진행했다.

경영효율을 위해 사업조정도 활발하게 추진됐다.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3명의 대표이사 체제로 전환해 완제품과 세트부문 간 독립성을 확실히 보장했다. 또, 태양전지 사업은 삼성SDI로 옮겼고, 만년 적자사업이던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사업은 세계 1위인 씨게이트에 넘겼다. 이와 함께 디스플레이 사업은 삼성전자에서 떼어내 독립 법인으로 만들었다.

이처럼 이 회장 복귀로 그룹 전반의 대응 속도가 빨라지면서 삼성은 어려운 대외경제 환경 속에서도 홀로 분전했다.

실제로 지난 3년 동안 글로벌 금융위기로 실물경제 침체가 심해지면서 대표적인 IT업체인 소니는 대규모 감원과 혹독한 사업구조 재편에 나서야 했고, 샤프는 경쟁업체인 삼성전자로부터 긴급 자금 수혈을 받았다. 또, 휴대전화 1위 기업이던 노키아도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갤럭시 시리즈의 연이은 대박으로 애플을 밀어내고 세계 1위로 뛰어올랐고, TV 시장에서는 7년 연속으로 1위를 지켰다. 덕분에 삼성전자는 최근 매년 사상 최대실적을 경신하며 작년에는 국내 기업 최초로 '200조원 매출-20조원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이 외에도 최근 들어 리튬이온 2차전지와 중소형 디스플레이 패널 등에서 새로 1위로 도약하면서 삼성그룹이 현재 세계 1위를 차지하는 분야가 20여 개로 확대됐다.

그 결과 이건희 회장이 복귀할 당시 80만원대였던 삼성전자 주가는 연일 사상 최고가 행진을 보이며 150만원대까지 치솟았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회장님이 경영복귀 후 직접 그룹 현안을 챙기면서 전체적인 긴장감도 높아졌고, 미래 전략도 명확해졌다"며 "그 결과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업황 속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 '미래 먹거리' 고민… '내부악재와 경제민주화'도 부담 = 지금까지 더없이 잘나간 삼성이지만 미래에 대한 고민은 아직 해결되지 못했다.

그룹 매출의 70%가 삼성전자에 쏠려 있고, 삼성전자 역시 매출의 60%가량을 휴대전화 사업에 의존하고 있어 지금의 성과에 안도할 수만은 없다.

이 때문에 삼성그룹은 지난 2010년부터 태양전지와 전기자동차용 2차전지, LED, 바이오, 의료기기 등을 '5대 신수종사업'으로 집중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2차전지와 의료기기에서는 일부 성과를 냈지만, 아직 다른 사업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또, 이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사회 각계와 더 자주 소통하고 협력해 사랑받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이 회장이 직접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다는 것은, 그만큼 이 부분에서는 아직 사회적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실제로 삼성은 이 회장 복귀 후에도 갖은 구설수에 휘말렸다.

작년에는 삼성생명에 이어 삼성전자와 삼성탈레스까지 연이어 담합 행위가 적발돼 이미지를 구겼고, 특히 삼성전자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방해한 사실이 드러나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올해 들어서는 삼성중공업에서 임원 등이 협력업체로부터 향응을 받은 사실이 적발됐고, 삼성전자 자금부서에서는 대리급 직원이 회삿돈을 빼돌린 사건도 발생했다.

최근에는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공장의 불산 누출 사고로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사고 처리 과정에서 사건 축소은폐 의혹이 불거지면서 큰 논란이 됐다.

이 회장이 직접 논란의 중심에 서는 일도 있었다.

지난 2011년 초 이 회장은 "한국경제는 낙제점은 면한 수준"이라고 말했다가 서둘러 해명을 하기도 했다.

작년에는 선대 회장인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차명재산을 둘러싸고 친형인 이맹희 씨와 누나인 이숙희 씨와 법정 다툼을 벌이면서 여론의 눈총을 받았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은 친형을 상대로 '이맹희 씨는 우리 집안에서 쫓겨난 사람' 등의 강경 발언을 쏟아내면서 논란을 일으켰고, 결국 직접 사과해야 했다.

또, 이 회장은 지난달 나온 1심 판결에서 승리했지만, '차명유산 상속 과정에서 다른 상속인들과 합의했다'는 주장은 입증하지 못해 유산소송과 관련된 논란을 완전히 잠재우지는 못했다.

최근 들어서는 두 달 넘게 요양차 해외에 머물며 대통령 취임식 등 중요 행사에 참석하지 않아, 건강에 대한 우려도 일부에서 제기됐다.

후계자로 꼽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작년 말 부회장으로 경영일선에 한 발짝 더 다가섰지만, 삼성전자 사내이사로는 나서지 않으면서 '책임경영'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특검으로 홍역을 치른 이건희 회장으로서는 복귀 후 여론에 많은 신경을 썼다"며 "하지만 여전히 일부 부문에서는 사회의 기대감에 미치지 못한 수준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yu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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