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고유권 기자 = 수주잔고 159억달러에 이르는 세계 4위의 조선업체인 STX조선해양이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돌파하고자 2일 채권단에 자율협약 체결을 신청했다.

STX조선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이날 오후 3시 채권은행들을 소집해 자율협약 체결 여부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STX조선이 최근 일부 대출금에 대한 이자를 연체하고 있을 정도로 자금 사정이 매우 안좋은 만큼 채권단이 자율협약 체결에 나설 가능성은 높다.

STX조선이 신청한 자율협약은 채권단과 맺는 일종의 신사협정으로 법적 구속력이 있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보다는 강도가 낮지만, 재무구조개선약정 보다는 수위가 높다.

채권단이 자율협약을 체결하면서 채무상환을 유예해 주고 긴급 운영자금 등을 수혈해 주는 대신 자산매각과 구조조정 등을 요구하면서 경영정상화를 이룰때까지 강도높은 간섭에 나설 수 있어서다.

STX조선이 채권단의 '섭정'을 받아들이겠다면서 자율협약 체결을 신청한 것은 그만큼 자금사정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운과 조선업황의 침체가 가속화하면서 현금 유동성 고갈 속도는 가팔라졌고, 빚을 내 빚을 갚은 것 조차 어려워지면서 결국 채권단에 'SOS'를 친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선박 가격이 지속적으로 떨어져 수주를 하더라도 역마진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고, 선박대금 결제조건은 헤비테일 방식으로 변경되면서 영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이익은 사실상 없었다.

특히 지난 2011년 하반기부터는 금융위기 이후 수주한 저선가 물량을 본격적으로 건조하기 시작하면서 수익구조는 더욱 나빠졌다.

STX조선은 지난해 연결기준으로 4천34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면서 적자로 돌아섰고, 당기순손실도 7천820억원을 기록하는 최악의 실적을 냈다.

실적 악화는 재무구조 악화의 '악순환'으로 연결됐다.

작년 말 기준으로 STX조선의 연결기준 부채총계는 12조1천970억원에 달했다. 전년의 11조7천332억원에 비해 5천억원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개별기준으로 뱅커스유전스와 일반원화대출 등 단기차입금은 1조1천236억원으로 전년의 7천453억원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공모와 사모로 발행한 회사채 만기도 속속 돌아오면서 자금 압박 정도는 더욱 커졌다.

내달부터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잔액은 9천950억원인데, 이 가운데 올해 말까지 갚아야 하는 자금만 6천500억원에 달한다.

신주인수권부사채(BW) 만기 물량도 적지 않고, 채권 은행들로부터 선박건조 등과 관련해 제공받은 선수금환급보증도 3천억원대에 이른다.

영업을 통해 들어오는 돈은 없고, 앞으로 갚아야 할 돈은 쌓여가는 상황에서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조달도 막히면서 STX조선은 돌파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STX조선은 현재 3만5천명에 달하는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선박건조와 관련한 협력업체가 1천400개, 6만여명에 달한다.

회사가 무너질 경우 엄청난 사회적 파장으로 연결될 수 있다. STX그룹이 STX조선의 자율협약 체결을 신청한 것도 이러한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STX그룹 관계자는 "종업원과 협력업체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하기로 한 것이다"면서 "채권단과 주요 경영사항을 협의한 뒤 추가 자산 매각 등의 경영정상화 계획을 성실하게 이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2009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겪자 채권단은 금호산업을 워크아웃 대상에 포함하고, 금호석유화학, 아시아나항공과 자율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 가운데 금호석화만이 지난해 말 3년만에 채권단 공동관리에서 벗어났다.

산은은 이날 채권 은행 긴급회의에서 STX조선의 자율협약 신청 내용을 설명하고 채권 은행들의 의견을 청취한 뒤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경우 서면결의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다.

각 채권 은행이 입장을 정리해 자율협약 체결 여부에 대한 가부를 산은에 통보하는 절차가 이뤄지며 75%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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