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또다시 자충수를 뒀다.

정부와 정치권의 전방위 기준금리 인하 압박에 절치부심하고 있어야 할 한은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를 일주일여 앞두고 버젓이 정부 핵심관계자와 집권여당 국회의원 등을 만난 것을 두고 하는 얘기다.

김 총재는 2일 저녁 서울 한 호텔에서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과 유일호 새누리당 국회의원, 박병원 은행연합회장 등과 회동했다.

한은 측은 사적인 모임으로 알고 있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등 정책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전일 자리를 같이한 이들은 모두 경기고 선후배 사이다.

그럼에도, 오해의 소지는 충분하다. 참석자들의 면면이 그렇다.

조원동 경제수석은 지난달 28일 최근 경제상황과 12조원의 세수 부족 문제를 언급하면서 재정 확장정책과 함께 통화정책의 협조가 필요함을 시사했다.

이번 정부의 경제전망이 대폭 하향 조정됐던 데는 조 수석의 역할이 컸다는 얘기도 나오던 터였다. 조 수석이 대규모 추경 등을 위해 전망치를 일단 크게 낮추고 봐야 한다는 논리를 강력하게 펴 이를 관철했다는 것이다. 조세연구원장 시절 경기부양책을 통해 시장에 확실한 신호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던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이런 설화에 무게가 실린다.

더군다나 유일호 새누리당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비서실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시기적으로도 이들의 만남은 적절치 않다. 새 정부가 경기부양에 올인하는 상황이고 정부와 정치권은 기준금리를 내리라고 공공연하게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모든 경제주체와 시장 참가자들의 시선이 한은의 금리정책 방향에 쏠려 있는 상황이다.

금통위는 이제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사적인 모임이라고는 하지만 김 총재는 워낙 민감한 시기라는 점을 고려해 참석을 하지 않는 게 좋았다. 이마저도 어렵다면 모임을 금통위 이후로 미루면 됐을 일이다.

결국 김 총재의 자충수로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금리를 내리면 "그럴 줄 알았다"는 비아냥거림이 쏟아질 것이다. 작년 7월 서별관회의 참석 때처럼 이번 회동이 김 총재 임기 중 두고두고 회자될 수도 있다. 금통위 의장인 한은 총재로서 신중하지 못한 처사였다.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 매는 식의 오해를 불러올 행동은 스스로 자제했어야 했다. (정책금융부 채권팀장)

ch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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