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으면 악순환 계속된다. 상장폐지도 생각했지만 지분 매각 최선"

-"아내도 모르는 결정…3조짜리 벤처기업 육성 학교 꿈꿔"







(서울=연합인포맥스) 곽세연 기자 = 2011년 2월. 서정진 회장은 인터뷰에서 "1천조 시장에 나갔으니 세계 10대 경제대국인 한국의 몫 만큼 가져와야 합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내가 하는 일이 의미있다니 기분 좋아 5년은 더 셀트리온 축성에 힘을 쏟아야죠"라며 의지를 보였다.

2013년 4월16일. 인간 서정진은 여의도 63빌딩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지쳤다. 내려놓고 싶다. 자유인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본인이 가진 상장사, 비상장사 지분 모두를 다국적 제약사에 매각하겠다고 선포했다.

5년은 더 힘을 쏟겠다던 서 회장을 무너뜨린 건 공매도다.

그의 결정에 물론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서 회장은 기자회견 후까지 "공매도는 `악'(惡)이다. 나로 인해, 나의 결정으로 인해 공매도 세력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다시는 이 땅에 발 붙이지 못하게 하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어제 한 숨도 못 잤다는 서 회장은 "공매도는 이 땅에 발 붙이게 해서도, 관대해서도 안됩니다. 그러나 당국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선'(善)이라고 했습니다. 안된다는 걸 알았죠"라며 본인의 힘으로는 되지 않았음을 고백했다.

셀트리온의 공매도가 이상하다고 조사해달라고, 제재해달라고 해도 금감원 등 관계당국은 움직이지 않았다. 정상적인 일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서 회장은 "공매도 세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자사주 매입 등에 자금을 썼는데, 사실 그 돈은 사업하는데 쓰여야 하는 돈이었다. 당국이 움직이지 않으면 내 것을 내줘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이 왔다"며 내 것을 내려놓는 데 공매도가 결정적인 계기였음을 설명했다.

셀트리온은 공매도 세력과 2년을 싸웠다. 최근 잦아드나 싶던 공매도가 다시 활개하자 서 회장은 자사주 매입 카드를 꺼내들었다.

서 회장은 유난스럽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공매도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천당에서 지옥까지 경험해 본 그의 "앉아서 돈 버는 것은 안된다"는 지론 때문이었다. 주위에서는 상장폐지를 권유했다.

이 때문에 이날 긴급 기자회견 소식이 전해질 때만 해도 공매도 세력과의 전면전이 예상됐다. 그러나 서 회장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지분 매각을 선포했다.

코스닥 시가총액 1위, 5조원짜리 기업을 거느린 서 회장은 "아내도 모르는 결정이다. 어제 저녁 10시에 임원들을 불러놓고 이런 결정을 얘기했고, 오늘 임직원이 알고 발표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 회장은 "12년간 사업하면서 사업 자체는 재미있고 쉬웠다. 문제는 시기, 질투, 무수히 떠도는 루머, 유언비어, 의혹제기였다"며 "더 큰 문제는 그것들이 탐욕 세력과 결탁되는 것"이라고 힘 줘 말했다.

주위에서는 창업주에 있는 통과의례라고 했다. 서 회장은 웬만한 사람은 이겨내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상장폐지도 할 수 있지만, 그건 주주에게 피해가 가는 일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전 재산인데, 전 재산에 피해를 줘서는 안됩니다. 내가 있는 한 공매도와의 질긴 악연을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나로 인해 부당한 제도가 바뀔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됩니다"

그는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보려던 사업가의 꿈이 공매도에서 무너졌음을 알고, 공매도 세력을 밝히고, 공매도를 제재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반복해 말했다.

서 회장은 새로운 세기와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두고 들떴던 1999년 샐러리맨에서 사업가로 변신해 성공한 `자수성가 주식부자'다.

32세에 대우차 임원에 올랐지만 얼마 안돼 대우차는 파산했다. 사업을 시작하기까지 죽을 결심도 여러 번 했다.

"성공해보니 성공한 사람에게 남는 건 허탈, 우울증이더라구요. 거기에 공황장애까지 왔습니다. 우울증은 죽고 싶은 병이고, 공황장애는 죽을 거 같은 병인데, 두 병이 함께 하니 죽지는 않았습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창업자가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는 그는 매각 후 확보한 자금 3조원 가량으로 창업 학교를 세울 계획이다.

사업을 시작할 시점에 "돈 참 안 빌려주대요"라고 토로했던 서 회장은 본인과 같은 후배들이 없게, 벤처 인큐베이팅에 남은 길을 갈 예정이다. 셀트리온도 출발 시점에 투자자금 전액을 외국에서 받았다.

서 회장은 "수성(守成)은 못했지만 축성을 했고, 창업해서 이 만큼 만든 것에 만족한다"며 "내가 내려놓지 않고 요구하는 것은 푸념으로 들릴 수 있어서 나를 내려놓고 요구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sykwa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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