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탈리아의 원내 제1당인 민주당과 제2당인 국민당이 새 대통령에 프랑코 마리니 전 상원의장을 추대하기로 합의했을 때만 해도 대통령 선출이 기대됐다. 양당의 의석수를 고려할 때 1002표 가운데 적어도 742표를 얻어 대통령 선출에 필요한 표인 정족수의 3분의 2를 얻을 것으로 기대됐기 때문이다. 민주당 내 반대가 얼마나 클지는 반영되지 않은 예측이었다. 상당수 민주당 의원들은 백지 투표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회에서 가까스로 제1당을 유지하는 민주당까지 내부 분열에 시달린다면 정치적 불확실성이 금융시장 악재로 부상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민주당 피에르 베르사니 당수가 마리니 전 의장을 대통령 후보로 지명하고 거수로 이에 대한 당내 찬반투표를 시행했을 때 반대표가 90표나 나왔다. 민주당 내에서 좌파 성향이 강한 세력과 젊은 정치인들은 마리니 전 의장을 지지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마리니 전 의장은 80세로 고령이고 노동부장관으로 국정 경험이 있지만 그마저도 20년 전의 일이다. 게다가 마리니 전 의장을 지지하기로 한 과정이 마테오 렌지 피렌체 시장 등 당내 소장파를 자극했다. 당 지도부는 국민당과 함께 마리니 전 의장을 추대하기로 한 데 대해 당과 아무런 협의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소장파들은 이번 결정을 'inciucio' 즉, 사기당한 것이라고 표현한다.

베르사니 당수는 3차 투표에서까지 대통령 선출에 실패함으로써 당내에서 입지가 좁아지는 것은 물론 재총선에서도 승리를 기약할 수 없게 됐다. 그는 총선 이후 줄곧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국민당과의 연립정부 구성에 반대했다가 대통령 선출 때 갑자기 돌아섰다. 마리니 전 의장이 선출되지 못하면서 모순되고 위선적이라는 비판 외에 베르사니 당수가 얻을 것이 없어 보인다.

베르사니 당수의 갑작스런 자세 변화와 관련해 일부 현지 언론은 그가 중도 좌파인 마리니 전 의장에 대한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지지를 얻는 대가로 현재 진행 중인 재판에서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를 보호해주기로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미성년 성매매, 탈세 혐의 등으로 계류 중인 4건 이상의 재판을 받고 있다. 그는 대통령 선거를 이유로 재판 연기를 신청해 공판이 선거 뒤인 5월초로 미뤄진 상태다. (국제경제부 이효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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