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고유권 기자 = 산업은행의 회사채 인수 기능은 여전히 자본시장의 뜨거운 감자다.

1997년 산업은행법에서 부대업무로서 회사채 인수를 가능하도록 허용하면서 16년간 국내 부채자본시장(DCM)에서 산은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산은의 DCM 시장점유율은 20%를 넘어설 정도였다. 기업들의 산은 의존도가 컸고 발행되는 회사채를 산은이 거의 싹쓸이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이렇다 보니 증권사들의 반발 역시 커져 갔다. "정책금융기관이 왜 민간영역에 들어와 먹거리를 다 채 가느냐"는 시장마찰 논리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산은에 회사채 인수 점유율 8%를 넘기지 말라는 지침까지 내려 보내면서 증권사들의 반발을 무마시키기도 했다.

산은 민영화 논쟁을 촉발한 것도 산은의 회사채 인수 때문이었다. 이러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곳은 산은 발행시장부다. 2002년 자본시장실이란 이름의 독립부서로 만들어진 이후 부서 명칭이 몇 번 바뀌어 11년째 유지되고 있는 산은내 핵심 부서중 한 곳이다.

자본시장실이 만들어 질 당시 설립 멤버로 참여했던 당시 4급 차장이 지난 1월 발행시장부를 총괄하는 부서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전영삼 발행시장부장이다. 전 부장은 2002년 설립 당시 참여해 3년반을 일했고, 서울대 연수와 종합기획부를 거쳐 2년만에 다시 컴백해 3년을 더 일했다. 이번이 세번째다.

전 부장이 발행시장부를 '친정'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러한 이력 때문이다. 그는 89년 산은에 입행한 이후 기업과 채권업무를 주로 해 왔다.

발행시장부장으로 오기 전 기업금융2부 총괄팀장직을 맡으면서 대기업들을 상대해 왔다. 두산그룹의 골칫거리였던 밥캣 리파이낸싱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해 내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BRS사업실장으로 발탁돼 STX그룹과 웅진그룹 등에 재무개선 컨설팅을 제공했다.

'친정'인 발행시장부의 부서장으로 다시 컴백한 지 딱 석달을 맞은 그는 고민이 많다.

그간 논란거리가 돼 왔던 산은 민영화가 사실상 백지화되면서 정책금융 기능 강화가 이슈로 떠올라서다. 시장마찰을 최소화하면서 정책금융을 뒷받침할 수 있는 발행시장부의 역할의 방점을 어디다 둬야 할 지를 두고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전 부장의 기본적인 생각은 명확하다. "정책금융을 위해서는 IB(투자은행) 능력이 더욱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전 부장은 22일 연합인포맥스와 인터뷰에서 "정부 재정부담도 있고 대외적으로 통상마찰 우려도 있어 과거처럼 정부가 돈을 대는 방식으로 정책금융을 하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 "시장 메커니즘이 시스템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그런 금융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바로 IB다"고 말했다.

정부의 정책 목표를 최대한 실현하고 막혀 있는 시장을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국책은행 산은의 역할은 시장 속으로 더 들어가야 찾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경제가 호황일 때는 정책금융으로 풀어야 할 일도 줄어 들지만 지금과 같이 여러 문제가 쌓여 있는 상황에서는 정책적으로 막힌 부분을 풀어야 하는데 금융의 적극적 지원이 없으면 안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회사채 인수 등과 관련한 시장마찰 논란과 관련해 그는 오히려 산은의 정책금융 역할 강화를 통해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봤다.

그는 "'AA' 이상 회사채는 금리 경쟁력이 안맞고 역마진 우려가 있어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다만 발행과 시장 소화 자체가 어려운 'BBB'급 회사채 인수와 관련해서는 산은의 역할이 필요하고 그에 대한 요구가 많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요가 없어서 차환조차 안되는 기업들이 발행하는 회사채는 시장조성 차원에서라도 산은이 나서서 풀어줘야 하고, 시장이 다시 작동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정책금융 기관이 일정 부분 리스크를 안고 갈 수 밖에 없더라도 시장에서 리스크를 분산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금융의 공공적 측면이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는 "금융은 결국 실물 경제가 갖는 변동성을 완화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금이 그 시점이다"면서 "해운이나 건설사들 처럼 어려운 기업들이 되살아 날 수 있을 때까지 버팀목이 돼 붙잡아 주는 역할이 필요한데 금융의 공공성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간 경제 규모가 확대되면서 기업들도 덩치가 커졌는데 산은 혼자서 감당을 하기에는 벅찬 측면도 있다. 금융의 공공성을 고려해 민간 금융기관들도 리스크 셰어링(risk sharing)에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사무실에 있는 소형 냉장고에는 숙취해소를 위한 드링크가 가득차 있다. 업무상 기업인들을 만날 일이 많다 보니 술자리도 잦아진 탓이다.

그는 "건설이 어려우면 건설사 사람들을 만나고, 해운이 어려우면 해운사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그 사람들의 말을 듣다 보면 거기에 해답이 있다"면서 "기업들의 어려움은 결국 자금이 없다는 것인데 이를 금융으로 어떻게 풀 것인지를 집중적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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