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진 지 오래고, 각종 세무조사, 금융소득종합과세 하한선 조정, 금융정보분석원(FIU) 자료의 국세청 공유, 공정거래위원회의 내부거래 조사 강화 등이 진행되자 한국의 부자들이 긴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5만원권 지폐의 퇴장(退藏)이 가속화되고, 일부 강남 부자들 사이에서는 현찰을 집에 보관하는 데는 쇠 금고보다 김치냉장고가 제격이라는 노하우가 비밀리에 공유되고 있다는 소문이다.

금고와 장롱만 뒤지는 도둑의 허를 찌르는 천기(天機)인 셈이다. 현찰을 신문지로 말아 김치통에 나누어 냉장고에 보관할 줄 누가 상상이나 하랴. 또 쇠 금고와 달리 김치냉장고는 온도와 습도 조절이 가능해 오래 보관하더라도 돈다발 낱장이 말라붙어 '떡'이 되는 현상이 없다고 한다. 안정성과 편의성이 입증돼 냉장고 판매량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부자들 사이에서는 화폐개혁에 대한 루머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현오석 부총리가 지난 3월13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최경환 의원의 질의에 대해 "경제에 미칠 충격과 대외적 측면을 감안해 고려해 볼 수도 없는 문제"라고 잘랐지만 소문은 이어지고 있다.

화폐 가치의 변동 없이 기존 화폐단위를 일정 비율로 낮추는 액면절하를 뜻하는 소위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에 대한 호사가들의 논리를 들어보면 그럴싸하기까지 하다.

새 정부의 시급한 정책 목표가 지하경제의 양성화이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 가장 좋은 수단으로 단기간에 결정적 '한방'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숨겨놓은 현찰을 전격적으로 햇빛에 노출하고, 이에 적절한 세금을 매기고, 경기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화폐개혁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지하경제 양성화 뿐만 아니라 원화의 국제적 위상 제고, 불필요하게 큰 회계 단위를 쓰지 않는 데서 오는 편리함 등 유익한 측면이 있지만 엄청난 비용을 수반한다. 직접 비용인 신규 화폐 발행 비용, 기업과 금융권 전산 시스템 변경뿐 아니라 실물 투기 및 자금 유출, 물가 상승 압력, 경제적 혼란 등 간접 비용까지 고려해야 한다. 경제규모가 커질수록 사회 경제적 비용이 비례해서 커진다.

우리나라에서는 1953년 구권 100원을 신권 1환으로, 1962년 구권 10환을 신권 1원으로 변경한 바 있다. 노무현 정권 인수위원회와 당시 한국은행에서도 도입 여부를 고민했지만 '장기적 이익보다는 단기 비용이 크다'는 이유로 중단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최근 김치냉장고 우스개와 화폐개혁 루머는 우리에게 '돈은 가장 겁이 많은 짐승'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환기시켜준다. 오죽했으면 이런 황당한 얘기들이 나돌까 정책당국자들도 원인을 한번 짚어봐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취재본부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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