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강규민 기자 = "시간을 좀 더 주면 약속을 지키겠다"

독일 대형은행인 도이체방크의 위르겐 피첸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3월 CEO 자리에 오르기 전에 자사 연례 콘퍼런스인 '유럽 비즈니스의 여성'에 참석해 여성임원의 수를 늘리겠다고 공약하면서 한 말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8일(현지시간) 피첸 CEO가 작년에 한 약속을 지킬 기회가 충분히 있었음에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면서 도이체방크가 여성임원 비율을 둘러싼 논쟁의 중심으로 떠올랐다고 보도했다.

대부분 은행에서 여성임원이 자치하는 비율은 ¼도 되지 않지만, 독일의 닥스(DAX)30 지수에 상장된 기업 중 약 절반 정도에만 최고경영층에 여성이 존재한다.

피첸 CEO와 안슈 야인 공동 CEO는 은행의 집행위원회 임원 수를 18명으로 늘리고 12명을 새로 지명했으나 모두 남성으로 구성됐다.

지난 15일에 공개된 도이체방크의 연례 사회공헌 연차 보고서(Corporate Responsibility Report)를 봐도 고위직책에 여성을 임명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지난 1년간 도이체방크 고위 경영직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단 1% 상승한 18%를 기록했다. 도이체방크가 최근 인수한 도이체포스트방크의 여성 임원 수는 집계 결과에 반영되지 않았다.

WSJ는 전 세계 금융업계에서 여성임원들의 부족현상이 나타났으나 도이체방크가 특히 비판의 대상이 돼 왔다고 지적했다.

독일 하원이 지난 18일에 기업 이사회 여성 비율을 2023년까지 40%로 높이는 법안을 반대 320표, 찬성 277표, 기권 1표로 부결시켰기 때문이다.

피첸 CEO의 공약이 특히 중요하게 받아들여졌던 또 다른 이유는 요제프 애커만 전 CEO가 "여성 임원이 늘어난다고 해서 집행위원회가 더 화려해지거나 예뻐지지 않는다"는 여성 비하적인 발언을 해 정치인들로부터 크게 비판받은 적 있기 때문이다.

이후 피첸 CEO가 여성임원을 늘리겠다고 강조하자 시장이 이에 큰 기대를 걸게 된 것이다.

유니언 인베스트먼트의 잉고 스페이치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은행에 여성 임원들의 수가 늘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피첸 CEO가 지난해에 약속했던 것은 문화적인 변화가 시작됐다는 것을 나타낸다. 다만, 이런 과정은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에베레스트 프린시팔의 시나 스카람니아는 "10만명의 직원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한 명의 여성만이 집행위원회의 임원으로 갈 수 있다"며 "이는 은행권뿐 아니라 유럽계 기업들 전체에 해당된다"고 꼬집었다.

은행 관계자들은 금융업계에서 여성 임원의 수가 부족한 상태가 지속되면서 남성 중심(boys club)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고위직에 여성이 있어야 위험관리와 사업결정에 더욱 도움이 된다고 했다.

피첸 CEO는 이날 독일 국영라디오 방송 도이칠란드푼크에 출연해 "우리는 이런 현상(여성임원 부족)을 바꾸고 싶다"면서 "우리는 공개적으로 현재 여성비율에 만족하지 못하다는 점을 밝혔고 여성이 고위직으로 올라올 수 있도록 내부적으로 상당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지금까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한편, 미국 투자은행(IB)에서도 여성임원 늘리기에 나서는 등 같은 문제에 직면했으나 유럽계 은행보다는 여성 임원 비중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JP모건체이스,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등 대형 IB들의 고위 경영직 자리에 여성이 최소 1명은 있고, 이사회에서도 최소 두 명이 자리 잡고 있다.







<세계 은행의 여성 임원 수. 출처: W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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