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곽세연 한재영 기자 = 한국거래소가 속전속결로 한화를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거래소가 상황에 따른 주관적 판단을 이번 사태의 가장 중요한 결정 근거로 삼으면서 형평성이 어긋난 것은 물론, 원칙이 깨진 만큼 제2의, 제3의 한화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의 소리도 크다.

▲"한화 상장폐지 수준 아니다"는 판단부터 한 거래소 = 거래소가 한화를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서 제외하는 데 걸린 시간이 극히 짧았던 것은 처음부터 한화가 상장폐지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대전제가 깔렸었기 때문이다.

영업의 지속성과 재무구조의 안정성을 고려했을 때 주주의 횡령ㆍ배임이 있다고 하더라도 상장폐지를 당할 만큼의 사유가 되지는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거래소 고위 관계자는 6일 "한화가 상장폐지 대상이 아니라고 결정하기는 너무나도 쉬운 판단이었다"며 "어차피 상장폐지가 안 될 것이라면 불필요한 매매정지에 따른 투자자들 피해는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거래소가 주말을 이용해 신속하게 처리한 것이 오히려 잘했다"고 말했다.

어차피 한화가 상장폐지 될 수준이 아닌데 굳이 매매를 정지하면서까지 심사 대상에 올려 투자자가 피해를 봐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다.

한화 측의 불성실공시 판단에 대한 원칙도 모호하다.

거래소는 지난 3일 주주의 횡령ㆍ배임사실을 확인한 지 1년이 넘어서야 공시했다는 점을 들어 한화를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할 것임을 예고했다.

하지만, 한화가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돼 실제로 매매정지 조치를 당할 가능성은 적다.

현재 한화가 받은 벌점 6점에 감경, 가중 세칙이 있어 거래소의 판단에 따라 벌점이 감산돼 아무런 조치를 받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래소는 사안의 경중과 시장 파급력을 고려해 결정한다는 방침이지만, 깎아줄 거라면 벌점제도는 왜 존재하는 것인지 업계에서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거래소 관계자는 "지금 당장 예단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라며 "해당 법인이 고의로 공시를 누락했는지, 공시 지연이 상습적인지를 위원회가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 측 소명에 거래소 "유효성 있다"..시장은 '갸우뚱' = 거래소가 한화를 상장폐지 심사 대상에서 제외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한화 측이 제출한 경영 투명성 개선 방안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한화가 경영 투명성 강화 방안을 거래소에 신속하게 제출했고, 해당 내용의 유효성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개선안이 이번 심사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결정에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다"고 말했다.

또 "회사 측이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는 개선 의지를 보이느냐에 따라 결정내용이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판단 근거가 '거래소의 원칙'이 아닌 '한화의 소명'이 된 셈이다.

기존 횡령ㆍ배임으로 상장폐지 조치가 내려진 코스닥 투자자들의 불만이 큰 것도 이 때문이다.

거래소가 유효성을 인정했다는 한화의 개선안을 접한 시장의 반응도 어리둥절하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한화의 경영 투명성 개선안이 지극히 일반적이라고 지적했다. 또 문제 재발을 위해 필요한 부분을 제대로 꿰뚫지는 못했다는 판단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기업 지배구조하에서 오너 리스크는 모든 기업이 다 안고 있다"면서 "거래소가 이러한 특성을 고려하고 한화가 내놓은 개선안을 유효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인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한화의 폐쇄적인 기업 의사결정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이번과 같은 문제는 다시 발생할 것"이라며 "거래소가 인정했다는 한화 측의 개선안은 현실적으로 유효성이 별다"고 비판했다.

▲투자자 날벼락…거래소 와치독 기능 상실 = 거래정지, 상장폐지라는 극단에 이를 수 있었는데도 이번 사태와 관련해 투자자는 전혀 경고 사인을 받지 못했다.

현재 검찰에서 특정 인물에 대해 구형을 해도 상장사와 연계 돼 있는지 알 수 없다. 검찰에도 거래소에도 관련 데이터베이스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찰과 협조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등의 시장 와치독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

또 전문가들은 시장 안정 명분이 확대해석되면 대기업에서 이런 사례가 또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거래정지 제재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늑장공시에 따른 벌점 6점으로 받을 수 있는 최고 제재는 하루 거래정지다.

이번 사태로 한화가 시장의 신뢰를 크게 잃었으나 눈에 보이는 제재는 아직 없다.

거래소가 '투자자 보호'와 '시장 안정성'을 고려했다면 관련 규정 보완책도 내놓아야 한다는게 증권업계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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