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하인리히 하이네가 노래한 '놀랍도록 아름다운 5월(Im wunderschonen Monat Mai)'이 왔다.

눈부시게 푸른 이 계절에 대한민국의 어른들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로 어느 때보다 몸과 마음이 바쁘다. 금융계에서도 이달에는 경제·금융부처 인사가 마무리되고 금융지주 회장 선출을 위한 절차가 본격 진행될 전망이다. 이미 지주 회장을 목표로 뛴다는 일부 인사들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다.

고위관료나 금융기관 대표를 지낸 명망가들이 지주 회장에 유독 관심을 두는 이유는 이 자리가 현대판 부귀영화를 '한방'에 거머쥘 수 있는 것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경우 부(富)와 귀(貴), 영화(榮華)는 분리되어 견제와 균형의 대상이 된다. 관료는 부 대신 명예를 선택해야 한다든지, 돈을 벌겠다면 권력은 포기해야 하는 '트레이드 오프' 관계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KB금융, 우리금융, 신한금융, 하나금융 지주 회장 자리는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만족하게 해주는 선망의 꽃방석이다.

무엇보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중 앞에 공개적으로 발가벗겨져야 하는 공포감이 없는 자리다.

월급도 매우 좋다. 지주사 마다 다르지만, 회장의 연봉은 15억원, 성과급도 많으면 10억 내외다. 한 3년 복무하면 팔자를 고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상대도 없다. 부처 장관조차도 지주 회장에게는 오라 가라 하지 못한다. 국회와 언론, 감사원의 견제도 공무원이나 공공기관보다 훨씬 느슨하다.

특히 다른 공공기관장들이 정부로부터 정기적 평가를 받는데 비해 지주 회장의 성과는 정책과 시장의 여건을 핑계 대며 책임감에서도 자유롭다.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금융지주마다 연 4백억원 내외에 이르는 사회공헌기금의 배분에 간접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점도 갑(甲) 노릇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기반이다.

이 자리는 또 과거 신세 졌던 이들의 민원과 청탁을 들어주며 인심을 쌓을 기회도 부수적으로 챙길 수 있다. 특히 외부 인사 청탁은 지주사 산하 은행장만 잘 구슬려 놓으면 큰 갈등 요인 없이 해결된다. 원체 조직이 크고 직원숫자가 많아 웬만해선 표시도 나지 않는다.

사소하지만, 공직자들처럼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골프를 칠 수 있는 점도 무시 못할 매력이다.

국민을 대신해 정부가 위임한 면허증으로 영업하는 은행을 산하에 두고, 혈세인 공적자금으로 메워준 기관을 책임지는 금융지주 회장의 기형적 '거버넌스'가 언제까지 지속될까.

견제받지도 않고 책임은 크게 없는데 '돈'과 '명예'와 '권력'이 쥐어진 자리를 금융당국이 오랫동안 그냥 놔두고 보지는 않을 것 같다.

(취재본부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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