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이 경기부양을 위하여 앞다퉈 돈을 풀면서 통화정책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일본이 아베노믹스를 천명하며 적극적인 양적 완화 대책을 내놓은 것이 경쟁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일본에 자극받은 유럽중앙은행(ECB)은 5월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했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필요한 경우 양적완화 규모를 늘릴 수 있는 길을 열어놨다. 한국을 비롯한 이머징마켓(신흥시장국)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신세가 됐다.

지난달 워싱턴에서 폐막한 주요 20개국(G20) 회의 이후 선진국 경제가 살아나야 세계 경제에도 좋다는 논리가 국제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1~3차 양적 완화를 시행하며 내세운 논리다. 미국 경제가 회복되면 미국에 수출하는 신흥시장국 경제도 살아나고 결과적으로 전 세계 경제가 호전될 것이라는 뜻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트리클다운' 효과다. 대기업의 성장을 촉진하면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가듯이 선진국 경제가 성장하면 신흥시장도 살고 총체적으로 세계 경기가 활성화한다는 얘기다.

G20 회의에서 도마 위에 오른 일본의 양적·질적 통화완화 정책도 결론적으로 '선진국 회복 우선론'이라는 논리가 먹혀들었다. 일본은 환율 문제는 품 속에 감춰두고 장기불황에 빠진 일본경제를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대책이 양적ㆍ질적 완화정책임을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일본 관료들은 회의가 끝나자마자 "아베노믹스에 국제사회의 이견이 없었다"며 적극적인 여론전을 펼쳤고 사실상 국제사회로부터 면죄부를 받았다는 외신들의 평가를 이끌어냈다.

통화정책을 이용한 경기부양에 소극적인 유럽도 미국과 일본의 변화를 의식한 듯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고 있다. ECB는 2일 통화정책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75%에서 0.5%로 내렸고 예금금리를 마이너스로 내릴 뜻이 있음을 시사했다. 예금금리를 마이너스로 내리면 은행에 머물던 돈이 시중에 퍼져 유동성 공급 효과가 커진다. 보수적인 유럽 정책 당국의 입장을 고려할 때 이러한 대책이 현실화되면 파격적인 변화로 받아들여질 것으로 보인다.

세계 경제 흐름을 좌우하는 선진국의 논리에 한국을 비롯한 신흥시장국들이 대항할 카드는 사실 마땅치 않다. 그들이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쓴다고 해서 신흥국들이 그대로 이를 따라가기엔 무리가 있다. 두 그룹의 경제여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달러와 엔, 유로화 등 국제통화를 가진 선진국과 로컬 통화를 가진 신흥국의 금융·통화정책의 효과와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와 수출시장에서 경쟁하는 일본이 선진국 회복론을 내세우며 자국 경제살리기에 나선 점을 고려하면 수수방관해서는 안 되는 처지다. 사실상 제로섬 게임으로 변한 수출시장에서 일본의 부활은 우리 경제의 부진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사면초가에 몰린 우리 경제를 살릴 수 있도록 우리 정책 당국이 힘을 모아 묘안을 짜내길 기대한다. (국제경제부장)

jang7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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