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미국발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의 어느 날, 달러-엔이 100엔을 막 무너뜨리려 하고 있을 무렵이다. 당시도 '설마 100엔이 깨지겠어? 반등하겠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만큼 100엔은 상징적인 의미가 큰 환율이었고, 일본이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수출을 주력으로 하는 일본 기업들은 100엔이 붕괴되는 초엔고 시대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일본 정부와 기업들은 "100엔이 무너지면 일본은 제조업 기반이 붕괴된다. 어떻게 해서든 100엔은 지켜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100엔은 깨졌고, 이후 4~5년간 일본은 두자릿수(77~99엔) 환율 시대에 머물렀다.

일본은 과거에도 초엔고 시대를 경험한 적이 있다. 아시아 외환위기가 오기 4년 전인 94~95년 경에는 80엔까지 내려갔었다. 그때 대장성(현 재무성) 국제금융국장인 사카키바라 에이스케(미스터 엔)의 가장 큰 고민은 엔고의 흐름을 어떻게 돌릴 것인가였다. 그가 쓴 『환율을 알면 세계가 보인다(국내 번역:환율과 연애하기)』를 보면 당시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이 책에서 "1달러=80엔이라는 환율로는 일본의 대표기업인 도요타자동차조차도 경영이 바로 서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 흐름을 반전시켜서 1달러=100엔까지 되돌려 놓고 싶은 것이 당시 우리 외환담당자들의 솔직한 생각이었다"고 했다. 사카키바라의 바람이 통했는지 그때 이후 엔화는 다시 약세로 돌아서 100엔으로 돌아왔고 2~3년 뒤에는 147엔(1997년)까지 가기도 했다. 당시 엔저의 부활을 이끈 일본 대장성의 환율담당은 사카키바라-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현 일본은행 총재)라인이었다.

이런 상황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90년대의 환율기술자 구로다가 일본은행 총재 자리에 앉았을 때 100엔 시대가 다시 올 것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달러-엔은 지난주 100엔을 넘겼다. 일본 언론들은 아베노믹스의 성공이라며 자화자찬했고 일부 외신들은 일본이 환율전쟁의 승자(Winner of Currecny war)라는 평가를 했다.

100엔 시대를 바라보는 한국 정부와 업계의 입장은 씁쓸하다. 100엔 시대가 시작되던 10일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일본 주식시장과 달리 국내 주식시장은 엔저 공습을 우려하며 급락했다. 도요타 주가는 5.03% 올랐으나 도요타와 경쟁하는 현대차 주가는 2.33% 하락했다. 도요타와 미쓰비시 닛산 등 일본 자동차 업계는 엔저 효과를 보며 실적이 개선되고 있으나 현대ㆍ기아차는 1~4월 수출 물량이 각각 12%, 5% 줄었다고 한다. 일본은 경제부활을 노래하고 있으나 그들과 수출시장에서 경쟁하는 우리 기업들은 한숨만쉬고 있다.

필자는 2008년 달러-엔 100엔이 무너지는 모습이 모니터에 새겨질 때 역사의 현장을 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광경은 이후 한국경제에는 청신호를 알리는 역사였음을 알게 됐다. 엔고 원저에 힘입어 우리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의 쓰나미를 견더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달러-엔이 100엔을 회복한 지금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우리 경제의 호기로 작용한 2008년의 역사와 달리 지금은 위기로 작용할 역사가 될지도 모른다. 일본이 90년대 중반 엔고를 극복하고 97년 147엔까지 엔화를 밀어 내렸을 당시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의 시련을 겪었다.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모든 경제주체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다.

(국제경제부장)

jang7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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