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자본주의 금융사(史)에서 엔화의 대세전환은 크게 두 시기로 구분된다. 85년 플라자합의 이후 10년 동안 달러당 250엔 수준이던 엔화가치가 98엔까지 오른 '엔고(円高)' 기간과, 이후 95년 G7이 '역(逆)플라자합의'에 동의하고 나서 약 10여 년 이상 엔화가 15% 이상 절하되는 '엔저(円低)' 시기다.

이후 방향성을 잃고 우왕좌왕하다가 최근 다시 달러가 102엔을 돌파한 것은 전환기적 역사적 의미가 있다. 100엔을 돌파한 것은 금융위기 이후 최고점인 123.8엔과 최저점 75.9엔의 50% 되는 되돌린 수준이라는 점에서 기술적 의미도 적지않다. 100엔을 넘어서면서 달러는 엔화에 대해 작년 9월 이후 30% 가까이 올랐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고 추가 상승 가능성이 점쳐지고 일차적으로 105엔, 110엔, 130엔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달러-엔이 기술적·역사적 저항선을 돌파했다는 분석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일본을 포함한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경기부양을 위해 공격적 통화정책을 취하는 탓이다. 안전자산인 국채매입과 위험자산인 증시가 모두 강세를 보이면서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화가 강해지고 있다. 특히 원자재 가격 안정과 각국의 경쟁적 통화정책으로 미국 주식시장이 상대적 강세가 유지되면서 달러 강세는 좀 더 이어질 공산이 높다.

이른바 '그레이트 로테이션(Great Rotation)'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우리에게는 엔화의 추가 약세가 모든 경제주체의 핵심적 관심사다.

한국은행이 말을 바꾸어 가면서 금리 인하에 나서고 정부가 17조3천억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하는 등 경기부양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이런 '도전'을 헤쳐나가기 위한 작은 '응전'이다.

이제 외환 당국도 가만히 손 놓고 있지는 못한다. 하다못해 외환거래세 등 규제 3종 세트를 다시 꺼낸다든지, 지난주부터 시작된 '스무딩 오퍼레이션'도 더욱 진화시켜 경기부양의 거국적 노력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다.

당분간 서울환시에서는 숏(Short)심리가 약화되며 달러-원도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분석이 많은 만큼 당국도 이를 예의주시할 것이다.

지난주에 당국이 긴잠을 깨고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 이유는 단기적으로 일본 기업의 수출 경쟁력 강화를 더 이상은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에 근거한다. 특히 연관 중소, 중견 협력업체 숫자가 많고, 고용에 대한 영향력이 매우 큰 자동차 산업이 엔화 하락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있다.

올해 초반까지 새 정부의 인사가 마무리되고 이제 당국도 침묵을 깨고 분위기를 일신할 태세다. 실제 지난 4분기 이후 최근까지 달러화 하락장에서 시장 일각에서는 당국의 존재감이 약해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를 의식해 최근 세종시에 있는 외환당국자들은 칼을 예리하게 숫돌에 벼리고, 결정적인 '한방'을 준비할 것이라는 후문이다. 금리 인하 이후 주식과 채권시장의 유출입을 살펴보며 원화의 강세가 수그러지지 않는다면 시장과의 장기전도 불사할 것으로 보인다.

대외적으로 '대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일본과 미국이 경기 회복이 되는데도, 우리만 현재의 환율 부담 때문에 소외감을 느끼는 상황이 지속하는 일은 두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취재본부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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