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장용욱 기자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정책인 '창조경제'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며 각종 투자와 채용 계획을 내놓았다.

'통큰 결정'으로 보이는 이 회장의 결단 이면에는 삼성의 고민과 절묘한 셈법이 엿보인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16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삼성이 창조경제를 중장기적으로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투자와 채용 계획을 발표한 것은 당장의 부담은 최소화하면서 새 정권에 최대한 성의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이 회장은 이달 초 9년여 만에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경제사절단 자격으로 수행했다. 이를 계기로 이 회장은 박 대통령의 '창조경제' 구상에 앞장서 힘을 실어줬다.

실제로 현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창조경제는 대한민국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도록 잘 선택됐다"며 "삼성도 창조경제가 구체적인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삼성은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이 끝난 직후인 지난 13일, 앞으로 10년간 총 1조5천억원을 출연해 재단을 설립해 미래기술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또, 15일에는 5년간 소프트웨어(S/W) 인력 1만명을 채용하고, 1천700억원을 투입해 총 5만명에게 S/W 교육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창조경제의 근간인 과학기술 발전과 인재 양성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인 것이다.

당초 재계 안팎에서는 삼성이 새 정권의 창조경제 정책에 호응하는 차원에서 올해 최대규모의 투자와 채용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금까지 새 정권이 들어설 때면 재계 대표인 삼성이 투자 확대 분위기를 앞장서 조성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은 이번엔 올해 투자와 채용에 대해선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지 않고 "작년 수준에서 탄력적"이라고만 밝혔다. 대신 중장기적으로 창조경제를 뒷받침하는 투자와 채용 계획을 내놓은 것이다.

이는 삼성의 고민이 반영된 '묘안'으로 평가된다.

삼성이 예년처럼 숫자가 확정된 올해 투자 계획을 내놓지 못한 것은 대내외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실제 집행에 변수가 커졌기 때문이다.

삼성 관계자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내부적인 계획을 발표해도 연말에 가서는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며 "그러면 마치 거짓말을 한 것처럼 비칠 수 있어 밝히기가 부담스러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고민을 피하고자 발표한 '중장기' 계획으로 삼성은 당장의 부담은 상당 부분 줄일 수 있게 됐다.

창조경제를 뒷받침하는 재단을 설립하는데 매년 삼성이 부담하는 비용은 1천500억원이다. 작지 않은 금액이지만, 자금 출연을 전담하는 삼성전자의 1년 연구개발비가 12조원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그리 부담스런 정도는 아니다.

또, 삼성이 S/W 인력을 육성하기로 한 것도 결국은 매년 500명 정도를 더 뽑기로 한 것인데, 삼성의 한 해 채용규모가 2만6천명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부담스런 수준은 아니다.

이처럼 삼성은 중장기적인 계획으로 부담을 분산시키면서도 새 정권의 핵심 정책에는 적극적으로 호응한다는 인상을 충분히 전달했다.

특히 박 대통령의 방미 일정 직후 재계 대표인 삼성이 나서 일련의 투자 계획을 잇달아 발표함으로써, 방미 성과가 더욱 부각되고 다른 기업의 동참도 유도하는 효과도 볼 수 있었다.

이와 함께 단순한 투자 계획이 아니라 공익성이 강한 구상을 내놓으면서 삼성으로서도 좋은 이미지도 얻을 수 있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은 장기적이면서도 창조경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구상을 내놓아, 당장 대외여건의 부담감을 줄이면서도 새 정부에 확실하게 힘을 실어줬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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