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월가의 전설'로 불리는 짐 로저스는 한국을 잘 알고 좋아하는 지한파(知韓派) 투자가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틈나는 대로 한국을 찾고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과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등 한국 내 인맥과 교류도 한다. 그렇지만, 그는 최근 한국에 투자하는 건 꺼린다고 한다. 북한 동전과 우표에도 투자하는 그가 한국 투자를 주저하는 이유는 뭘까.

지난주 한국을 방문한 짐 로저스는 그 이유를 일부 공개했다. 그는 지난 31일 고려대 인촌기념관강연에서 한국 주식시장 전망을 묻는 질문에 주식은 변화가 큰 자산이어서 투자하지 않는다고 했다. 일반론적 답변으로 한국 증시에 투자하지 않고 있음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이다.

공개적으로 얘기하진 않았으나 그가 한국 투자를 꺼리는 진짜 이유는 환율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이번 방한 기간중 주변 사람들에게 "환율이 불안정해서(currency is unstable) 한국에 투자하기 겁난다"고 했다고 한다.

가치투자를 하는 롱텀(long-term) 투자자들은 환율과 같은 주변 변수가 안정되는 것을 가장 우선시한다. 멀리 보기 때문에 순간의 시세등락에 초연하고 큰 트렌드의 변화를 본다.

소규모 개방경제(Small open economy)인 한국은 환율변동에 항상 취약하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자금은 글로벌 경제상황이 불안하면 언제든 떠날 소지가 크다. 미국이 금융위기를 겪으면 한국에 있던 미국계 자금이 빠져나가고 유럽이 재정위기를 겪으면 유럽계 자금이 떠나간다. 최근엔 일본계 자금이 한국에서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제기되고 있다. 아베노믹스가 실패해 금리가 급등하고, 일본 국채를 대규모로 담은 일본 은행권이 손실을 겪게 되면 한국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할 지도 모른다는 시나리오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일본은 외환보유액 고갈로 어려운 우리 사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300억달러를 회수해갔다.

짐 로저스가 원화 환율을 불안하게 보지만 한국의 미래에 대해선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특히 그는 한국의 통일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로저스는 강연에서 "한국이 통일되면(New Korea) 일본보다 훨씬 더 좋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가 북한의 동전과 우표에 투자하는 이유는 한반도가 통일되면 희소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로저스는 북한이 몇 년 뒤(next few years) 사라질 것(disappear)이며 남북한은 합병(merge)할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 발언은 외신들이 그의 북한 동전 투자를 두고 '北의 붕괴(collapse)'에 베팅하고 있다고 보도한 것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는 붕괴라는 표현이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로저스의 '북한觀'을 보면 미래를 꿰뚫는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여러 저서를 살펴보면, 두 가지 투자원칙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투자대상이 매우 싸야 하는 게 제1원칙이고, 투자에 유리한 극적인 변화가 곧 일어나야 한다는 게 제2원칙이다. 지금 북한 동전은 매우 싸고, 투자에 유리한 변화(통일)를 곧 앞두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런 투자원칙을 끌어내는 힘은 역사와 철학적 통찰이다. 로저스는 고려대 학생들에게 "경영학석사(MBA)와 재무 공부는 그만하고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라"고 조언했다. 역사를 공부하면 변화(change)를 읽을 수 있고, 철학을 공부하면 판단(judge)하는 능력이 생긴다는 이유에서다. 간교한 투자기술보다는 큰 그림을 보는 통찰력을 훈련하라는 메시지는 학생뿐 아니라 현직 시장전문가들에게도 좋은 자양분이 될 것 같다.

(국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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