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창 기자 = 국세청은 지난달 29일 역외탈세 혐의자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며 몇 가지 사례를 제시했다.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조세피난처의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해 세금을 탈루한 사례.

페이퍼컴퍼니는 CJ그룹 비자금 수사와 독립 인터넷 언론인 뉴스타파의 조세피난처 페이퍼컴퍼니 설립자 명단 발표 등과 맞물려 최대 이슈로 부각됐다.

그렇다면, 왜 재벌 회장이나 대기업, 자산가들이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할까.

4일 금융시장 등에 따르면 몇 가지 이용 사례에서 이유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비자금 조성, 탈세, 변칙상속 등으로 악용 = 우선 페이퍼컴퍼니는 탈세 수단으로 가장 많이 활용되는데 특히 소득세 탈루가 가장 흔하다.

국세청에 따르면 중국과 동남아에 생산공장을 두고 사업을 하던 한 사주는 중국 공장 이익을 지주사인 홍콩의 페이퍼컴퍼니에 배당하고 사주는 이를 해외 비밀계좌에 숨겨 소득 신고를 누락했다.

동남아 공장의 경우 영국령 버진아일랜드(BVI) 소재 페이퍼컴퍼니를 우회해 수출하도록 해,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받은 무역 소득도 비밀계좌에 숨기고 역시 신고하지 않았다.

또 BVI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금융상품에 투자해 발생된 수익을 역시 해외 계좌에 숨기는 사례도 적발됐다. 이번 국세청이 거론한 사례는 아니지만, 증여세 회피 목적으로도 페이퍼컴퍼니가 활용된다

과거 한 자산가는 해외에 있는 아들에게 수십억원을 증여하고도 이를 아들 명의의 페이퍼컴퍼니에 투자한 것처럼 송금했다. 이후 자산가가 숨지자 아들은 페이퍼컴퍼니가 결손상태인 것처럼 장부를 조작해 주식가치를 '0'원으로 신고했다.

국세청이 역외탈세 혐의로 조사하는 기업 및 개인사업자 중 이러한 변칙상속의 의혹을 받는 곳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페이퍼컴퍼니는 비자금 조성용으로도 활용된다.

중계무역을 하는 한 회사는 제3자 명의로 홍콩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후 중계무역을 한 것처럼 서류를 꾸몄다. 여기서 발생한 이익금을 해외 계좌로 보내 세탁하는 수법으로 재산을 빼돌렸다.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이재현 CJ그룹 회장도 회사 재무팀을 통해 해외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고 국내 계열사와 실제 거래가 있는 것처럼 꾸며 차명재산을 해외로 빼돌리고 이 과정에서 세금도 탈루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른바 국내 주식시장의 '검은 머리 외국인'도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한다.

과거 스위스를 활동 본거지로 삼았던 검은 머리 외국인은 한국과 스위스가 금융정보 교환 협정을 맺은 이후 조세회피지역의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하고 있다. 이 지역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고 이 회사 명의로 외국인 증명서를 받아 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일부 기업은 대주주 지분을 드러나지 않게 관리하고자 이런 방법을 활용하기도 하고 세금 부담을 덜기 위한 고액 자산가가 애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M&A와 투자시 중요한 역할 = 그렇다고 조세피난처의 페이퍼컴퍼니 설립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재무 개선을 위해 다른 투자자와 페이퍼컴퍼니를 설립, 기업 지분 매각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할 때도 있고 해외 기업 지분 인수나 투자 시 직접 조달에 따른 재무 부담을 덜고 업무 편리를 위해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해운사의 경우 선박 발주와 운영, 관리를 위해 페이퍼컴퍼니를 자주 애용한다.

1조원이 넘는 선박 발주 비용을 대기 위해 선박 금융을 받는데 이때 담보권 강화를 위해 페이퍼컴퍼니가 설립된다. 해운사가 빌린 돈을 갚지 못할 경우 대주단으로서는 선박을 확보해야 하는데 해당 선박이 조세피난처의 페이퍼컴퍼니 소유로 돼 있으면 쉽게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계 IB 관계자는 "규제가 적은 지역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면 자유롭게 자금을 입출금하고 낮은 법인세율로 합법적인 절세를 할 수 있다"며 "페이퍼컴퍼니를 통한 비자금 조성이나 탈세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모두 불법으로 간주되는 분위기인데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역외 페이퍼컴퍼니가 그 성격상 악용될 소지는 다분하지만 지나치게 규제하면 투자 위축 등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며 "자금 흐름에 대한 사정당국의 감시망 강화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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