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고유권 기자 = 돌파구가 안 보인다.

최악의 업황 속에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국내 해운사들이 자금난에 시름하고 있다.

만기가 돌아오는 빚을 갚고, 당장 배를 띄울 운전자금을 마련하는 것 조차 힘이 부친 실정이다.

세계 5위의 국내 해운업계가 꽉 막힌 자금 사정에 아우성이다. 엄살이 아닌 위기 그 자체다.

국내 3위의 해운사인 STX팬오션이 산업은행의 인수 포기로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면서 사정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

은행권에서 해운업을 이미 '요주의 업종'으로 분류해 신규 자금 지원을 꺼리고 있다.

신용위험이 높아진 탓에 회사채 시장 등 직접금융시장에서 해운사들은 사실상 자금을 조달할 수 없는 상태다.

국내 1,2위의 해운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도 최악의 상황 속에 시름만 커져가고 있다.

18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한진해운의 올해 1분기 부채비율(연결)은 775.1%다. 작년 말의 754.4%에 비해 더 올랐다.

적자를 내면서 손실이 누적되면서 자본금을 까먹고, 부채는 되레 늘어나는 상황이어서 부채비율은 오를수 밖에 없다.

현대상선이라고 다를 게 없다. 지난 1분기 현대상선의 부채비율(별도)은 898.2%로 치솟았다. 작년 말의 799.1%에 비해 100%포인트 가까이 올랐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올해 1분기에 각각 599억원과 1천28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작년 같은 기간의 2천173억원과 2천205억원에 비해 손실폭은 대폭 줄었지만 적자 구조를 탈피하지는 못했다.

STX팬오션과 대한해운이 유동성 문제로 법정관리에 들어간 상황에서도 그룹사 물량 덕에 그나마 영업환경이 상대적으로 낫다고 평가받던 SK해운도 최악의 상황을 비켜가지는 못하고 있다.

SK해운의 올해 1분기 부채비율(별도)는 766.9%였다. 작년 말 682.5%에서 급상승한 수치다.

영업은 안되고 지출돼야 하는 돈은 계속 필요하고, 빚은 늘면서 이자를 갚기도 벅차다.

한진해운의 이자보상비율은 마이너스다. 통상 이자보상비율이 1을 넘어야 벌어들이는 이익으로 금융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

하지만 한진해운은 벌어들이는 이익이 없다 보니 그나마 가지고 있는 돈으로 이자를 충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업황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대형 해운사들은 팔수 있는 것은 모두 매물로 내놓고 있다. 항만 설비부터 노후선박까지 보유한 모든 자산이 대상이다.

직접금융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에도 사력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녹록치 않다. 투자자들의 위험 기피 현상이 심화하고 있어서다.

한진해운이 올해 발행한 회사채는 고작 500억원이 전부다. 달러표시 변동금리부채권(FRN) 1억5천만까지 감안하면 2천억원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업계 1위인 한진해운 조차 회사채 시장에서의 자금조달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진해운은 결국 신주인수권부사채(BW) 3천억원 어치를 발행해 자금을 확보했다. '우량' 기업이 BW를 발행했다는 것은 그만큼 자금사정이 예전만 못하다는 신호다.

한진해운은 자본을 늘리고, 부채를 낮출 수 있는 영구채권 발행에 도전하고 있다. 규모는 1천억∼1천500억원 정도로 크지 않다.

그러나 직접금융시장에서 한진해운이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수단이 영구채권이다. 7%를 웃도는 고금리는 감당할 태세다.

최근 SK해운도 영구채권 발행을 위해 주요 증권사들을 상대로 타진했지만 계획을 접어야했다. 수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진해운도 수요가 없어 발행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솔솔 나오고 있다. 지난해 말 현대상선도 영구채권 발행을 추진하다 결국 200억원 어치만 발행할 수 있었다.

현대상선은 올들어 아예 회사채 발행 자체를 시도하지 않았다.

지난달 해외 투자자들을 상대로 보유중인 KB금융지주 주식 305만5천주를 기초로 1억1천760만달러의 교환사채(EB)를 발행해 자금을 확보했다.

정작 해외 투자자들은 EB를 사지 않았다. 주관사로 나섰던 대우증권과 현대증권이 대부분의 발행 물량을 떠안아 줘 발행이 가능했다.

현대상선은 BW 발행도 검토하고 있다. 한진해운이 BW 발행에 성공한 게 자극제가 됐다. 국내 주요 증권사를 상대로 발행 추진 의사를 전달해 놓은 상태다.

영구채권 발행을 추진하다 접은 SK해운은 회사채와 달러표시 FRN 발행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산업은행에 SOS를 친 상태여서 그나마 발행 성사 가능성은 높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아무리 대형 선사라 하더라도 STX팬오션의 법정관리로 회사채 발행은 사실상 어렵다고 봐야 한다"면서 "해운사들이 직접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수단은 현재로선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해운사들은 정부가 해운보증기금 설립에 적극 나서주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주무부서인 해양수산부는 금융위원회 등 금융관련 부처의 협조가 없이는 재원마련이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회사채 시장의 심각한 경색 현상을 타개하기 위한 비상조치도 정부가 마련해 주길 바라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여전히 미온적이다.

회사채 신속인수제 또는 채권시장안정펀드 등을 통해 회사채를 사주는 방식으로 자금 지원에 나서줬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금융당국은 "시장 상황을 면밀하게 점검하고 있다"는 말만 되뇌고 있다.

국내 대형사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나서 무작정 지원에 나서줄 수 없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업계 상황이 생각보다 매우 심각하다는 점을 감안해 지원책을 서둘러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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