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해상 한국자금중개 사장>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선영 기자 =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중략)…국가에는 충성을 국민에게는 봉사를 일념으로 삼아 근면하고 정직하게 성실하고 공정하게" <김남주 詩. 어떤 관료>

권해상 한국자금중개 사장이 이 시를 인용한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행정고시 24회. 1999년 기획예산처 사무관으로 출발해 예산실 예산제도과장, 균형발전재정기획관, 대통령 혁신관리 비서관,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기획협력국장 등을 거쳐 지난 2010년부터 OECD대표부 공사를 역임한 그였다. 이른바 관료 출신으로 꼽히는 권 사장이 아닌가.

공직 생활을 하다가 민간으로 분류되는 한국자금중개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소감을 묻는 말에 권 사장은 보기좋게 시 한 편을 띄웠다.

"회사라는 조직의 속성도 관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같은 조직사회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내가 돈을 버는 방법을 지시하거나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림을 선호할 수는 있지만 직접 그릴 수는 없죠. 이게 공무원과의 차이점입니다"

권 사장은 '생각없음 병'을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인용하면서 상사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으로 책임을 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생각없음 병'이야말로 나쁜 관료의 고질병이라고 그는 꼬집었다. 어느 조직이든 속성이 비슷하지만 구성원으로서 옳은 방향성을 갖고 책임 의식을 느껴야 한다고 강조한 셈이다.

권 사장과의 인터뷰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나 미로찾기 같았다. 이야기는 종종 산으로 갔다. 한참을 헤매나 싶으면 길을 잃지 않고 돌아와 본격적인 이야기가 나오곤 했다.

그는 시장을 존중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관료 생활 30여년의 경험을 살려 한국자금중개가 큰 방향성을 잃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권해상 사장과의 일문일답.



-서울외국환중개와의 거래화면 통합이 최근 큰 이슈로 떠올랐다. 이에 대한 생각은

▲정부도 기업도 혁신이 중요하다. 과거 예산처에서 혁신TF담당이었다. 민간 혁신도 많이 했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외부 충격이나 위기에 의해서만 조금씩 바뀐다. 혁신하려면 위기 시점에 유도된 쪽으로 움직이도록 미리 좋은 방향으로 준비해야 한다.

시간이 걸리지만 역사는 발전하는 것이다. 혁신의 첫번째는 고객은 항상 옳다는 점이다. 그 시장의 고객 뜻대로 가는 것이다. 수요자의 요구자가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

이로 인해 일시적인 왜곡이 있더라도 출렁출렁하다가 차츰 수렴하는 것이다. 우여곡절도 있을테고, 딜러들, 수요자의 이익이 반드시 나지 않을 수도 있다. 방향도 좋고, 효과도 있다면 빨리 아젠다 세팅이 필요하다.

우려가 있다면 보완을 해야 한다. 하늘 보는 사람이 있으면 땅을 보는 사람도 있듯 큰 방향을 보는 게 필요하다.

▲한국자금중개에 대해 인상적으로 본 점은

-동양에 천(天),지(地),인(人)이라는 게 있다. 천은 시간(TIME), 지는 공간(SPACE), 인은 사람(PEOPLE)이다. 지금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도 이런 것들로 이뤄져있다. 시간과 공간 속에 있는 것이다.

(회사 소개자료를 펼치면서)한국자금중개는 이 업계에서 이 업종을 제일먼저 시작한 회사다. 이게 앞에서 말한 천(시간)이다. 그리고 지(공간)는 지난 2007년 홍콩을 비롯해 중국 등으로 공간을 확대하려고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인(사람)은 우리 자금중개 사람이 나가서 시장 곳곳에 퍼져있다.

즉, 한국자금중개는 천지인이라는 세 가지 기둥이 확실한, 뼈대있는 회사라는 이야기다.

사실 예전에는 우리가 중인, 기술을 다루는 전문가들을 별로 인정을 안했지 않나. 정치, 철학, 경제가 핵심이었다. 지식은 사고 팔 수 있다. 그런데 지혜. 자기만의 개똥철학은 그렇지 않다. 개개인마다 지혜가 있고, 그걸 존중해야 한다. 나는 자금중개 직원들의 지식보다 지혜를 테스트해서 그 지혜를 모아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환시장은 새로운 분야 아닌가.

▲생소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문성은 배우면 되지 않는가. 예를 들어 안경을 갈아끼울 수 있듯이. 그런데 관리 업무만 해도 10년째 해도 전문가들을 데리고 CEO하기는 쉽지 않다.

홍콩에 지난 2007년에 진출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본다. 중국 베이징 사무소 역시 중요하다. OECD에 있을 때 느꼈지만 중국을 놔두고는 아무것도 안된다. 중국이 조금만 침체돼도 글로벌 시장이 휘청거릴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시장이다. 지금은 막아놔서 그렇지 뚫리는 순간 블랙홀이 될 수 있다. 언젠가 외환시장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변동성은 우리나라보다 작겠지만 방향을 보고 가는 게 중요하다.

-취임 후 직원들에 당부한 내용은

▲취임사에서 나는 몇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는 고객은 '왕'이 아니라 '옳다'는 것이다. 고객은 영원히 옳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고객도 외부 고객과 내부 고객이 나뉜다. 외부 고객은 물론 동료와 상사, 후배 등 내부 고객의 만족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이게 돼야 외부 고객도 만족시킬 수 있다.

두번째 강조한 것은 지속가능성이다. 지금은 10조원 짜리 시장이 나중에 100조원 짜리가 될 수 있다. 그러면 지금 하는 편이 좋다. 그러나 반대로 지금 안하는게 나은 것도 있다. 술을 마실 때도 마찬가지다. 지속가능한 수준에서 마셔야지 너무 무리하면 안된다.

자기 일에 대한 컨트롤도 중요하다. 권력을 막대기라고 가정했을 때 권력이 많으면 그림자도 길다. 한 사람이 너무 잘나갈 때 소금을 뿌려주는 존재가 필요하다. 친구보다는 마누라가 소금 쳐주는 역할로서는 좋은데.

다음으로 나는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이야기는 싫어한다. 관료로서도 쓸데없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열심히'가 아니라 '제대로' 해야 한다. 방향도 옳아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게 비전이다. 추구하는 방향, 가치가 맞아야 함께 갈 수 있다.

-앞으로의 포부 한 말씀

▲앞으로 민간에도 세일즈를 잘해서 제대로 된 시장을 만들어 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열심히 들어야 한다고 본다. 지금은 초반이니까 잘 듣고 6개월 후에는 안들을지도 모르겠지만 잘 듣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syj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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