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창 기자 =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돈을 받아야 하는 처지인데 그럴 리가 있습니까. 그건 그쪽 엄살이죠"

국내 사모투자펀드(PEF) 관계자는 모 연기금 측에서 '이제는 PEF가 갑'이라고 했다는 말을 전하자 1일 이렇게 대답했다.

'슈퍼 갑'으로 불리는 연기금이 마땅한 투자처 찾기에 골머리를 앓으면서 '엄살'을 부린 것이겠지만, PEF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 인수·합병(M&A) 자문사인 IB와 회계법인, 로펌에게는 PEF가 이미 가장 중요한 고객이다.

대기업이 경기 침체에 자금을 쌓아두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고 문어발식 경영에 대한 사회적 비판을 잔뜩 의식하고 있어 PEF는 이제 국내 M&A 시장의 큰 손으로 자리매김했다.

MBK파트너스와 보고펀드, 한앤컴퍼니는 이제 웬만한 경영권 이전 거래에서 단골손님이다. MBK는 거래 종료 기준으로 올해 벌써 웅진코웨이(현 코웨이)와 네파, 일본의 코메다(Komeda)를 연이어 인수하는 기염을 토했다.

보고펀드도 삼양옵틱스의 광학 렌즈 사업부 인수를 확정해놓았고 동양생명을 앞세워 ING생명 인수전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한앤컴퍼니는 유진기업의 광양공장과 코아비스를 인수했고 비록 실패했으나 대한해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부동산 시장은 이미 PEF 세상이다. 간혹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이 사업상 필요에 따라 토지나 건물을 매입하기도 하지만 거래의 80~90%는 자산운용사 등이 설정한 부동산 PEF가 인수자로 나서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글로벌 경기 침체와 금융시장 불안으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기관투자자들이 트랙레코드가 어느 정도 쌓인 PEF를 찾을 수밖에 없다. PEF가 좋은 인수처를 발견해 제안해올 경우 과거처럼 배짱을 부리면서 높은 수익률과 안전장치를 요구하기 점점 어렵다는 얘기도 나온다.

심지어 다른 기업에 경영권을 넘기지 않고 잠시 PEF에 맡겨뒀다가 나중에 사정이 좋아지면 다시 우선매수하겠다는 제안도 끊이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기관투자자는 "아직은 PEF 측의 방문을 받고 있으나 언젠가는 돈을 들고 찾아가서 제발 맡겨달라고 할 때가 올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증권이 올 4월에 개최한 2013년 글로벌 PEF포럼에서 국내 기관투자자 7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72.2%가 올해 1천억원 이상을 PEF에 투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PEF가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실적을 내기 위해 너무 비싼 가격에 매물을 거둬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래전에 인수한 씨앤앰의 엑시트를 고민하는 MBK는 웅진코웨이도 비싸게 매입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기업이 해당 가격에 인수했다면 수긍할 수 있으나 5년 내외 기간 내에 높은 수익을 추구해야 하는 PEF로서는 무리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PEF의 위상이 갈수록 높아질 것이라는 예상에는 이견이 없다.

국내 IB 관계자는 "대기업은 몸을 사리고 있고 국내 PEF가 점점 트랙레코드를 쌓아가면서 신뢰를 받고 있으며 기관투자자들은 투자처를 찾지 못해 고민하고 있다"며 "PEF의 영향력이 점점 강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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