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지난주 사석에서 모 금융지주사 A회장과 사내 인물평을 하던 중에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첫사랑으로 화제가 된 조자룡(趙子龍)에 대한 얘기로 옮아갔다.

삼국지에서 가장 '간지' 나는 인물인 그에게 붙는 수식어는 '탁월한 무예', '용감', '자신의 공적을 내세우지 않는 무한 충성'이다. 유비와 관우, 장비, 제갈량, 황충 조차도 그를 존중하고 흠모했다.

특히 그의 충성심은 시류에 영합하고 배신이 횡행하는 시대일수록 추앙받았다. 중화문화권인 우리나라는 한번 인연을 맺은 주군을 향한 의리를 가장 숭고한 가치로 믿는 정서가 만연하다. 오죽했으면 오랜 세월 그를 그리워하며 '굿'을 하는 무당들까지 수두룩했을까.

한국인이 좋아하는 인물 중에 정몽주가 상위에 자리매김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이방원의 부귀영화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선죽교에서 철퇴를 맞아 죽은 '한줄기 붉은 마음'(丹心)을 잊지 못한다.

이런 문화 탓인지 우리나라의 정치지도자나 오너 경영인, 금융지주 회장들은 부하의 능력보다는 여전히 충성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예전 '신한은행 사태' 때 B 행장이 임원을 긴급 집합시켜놓고 '충(忠)'을 주제로 2시간 동안 사자후(獅子吼)를 토한 것은 이에 대한 로망 때문이었지도 모른다.

지난주에 중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삼국지를 탐독하고 자서전에서 '첫사랑은 조자룡'이라고 고백한 내용이 중국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박 대통령은 "돌이켜 보건대 첫사랑은 조자룡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그가 등장할 때마다 가슴이 설랬다"고 했다.

하지만 이 얘기는 거꾸로 동시대 사람 가운데서 그런 충직한 인물을 찾기가 어렵다는 반어법일 수도 있는 것 같다. "무뚝뚝하고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던 사람이 나중에 보니 더 의리가 있고 인정이 많은 사람이었음을, 학식이 많고 똑똑하여 많은 기대를 걸었던 사람이 나중에 보니 자기중심조차 제대로 잡을 수 없고 아부를 일삼는 사람이었음을 알게 되는 것이 또한 인간사의 한 단면이다. 덧없는 인간사다" ('박근혜 일기' 1981년 3월2일)고 고백한 것을 보면 그렇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일기단창(一騎單槍)의 탁월한 무술과 8척의 잘생긴 용모에 충직하다고까지 한 조자룡같은 인물이 있다면, 무능력하고 질투심 많은 경쟁자에게 시샘의 대상이 됐을 것 같다. 너무 잘나서 모함을 받을 것이고, '한방'에 쓰러지는 게 아니라 '잔 매'에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A 회장은 대화도중에 예나 지금이나 동과 서를 막론하고 지도자의 공통 고민은 '좋은 부하를 찾는 일'이고, '부하는 믿을 수 없는 존재지만, 동시에 믿어야만 하는 대상'라는 화두가 진행형이라고 말했다.

금융지주사마다 후속 인사와 관련해, 출중한 능력에, 어려운 때와 일에 몸 아끼지 않고, 공평무사하게, 주군을 예로 섬기고 따르는 유협(遊俠)시대의 인물을 만나려는 '회장님'의 고민이 깊은 것 같았다.

(취재본부장/이사)

tschoe@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