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고유권 기자 = 국회가 지난 2일 본회의에서 일감몰아주기 규제 등 경제민주화 핵심 법안들을 통과시키면서 경제민주화 입법 활동의 반환점을 돌았다.

하지만, 재계 등의 반발과 여야 간 이견에 따른 '속도조절론'으로 대기업 지배구조와 관련한 법안 등은 정작 처리되지 못하면서 반쪽짜리 '경제민주화 입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야는 9월 정기국회에서 대기업 신규 순환출자 금지와 대기업 계열 금융회사의 의결권 제한 등의 법안 등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견을 좁히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절반의 성공 = 국회가 지금까지 처리한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은 6개 정도다.

지난 4월 국회에서 대기업의 하도급업체에 대한 '납품단가 후려치기'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강화하는 하도급법 개정안을 처리했고, 대기업 임원들의 개별 연봉을 공개하는 내용의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개정안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강화법안은 대표적인 경제민주화 법안으로서 기존의 기술유용 행위뿐 아니라 하도급 대금의 부당 단가인하, 부당 발주취소, 부당 반품행위 등에 대해 3배 범위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부과토록 한 것이 골자다.

당초 손해배상액을 최대 10배로 대폭 올리는 방안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기업 부담 우려가 제기된 탓에 한발 후퇴했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사업보고서에 임원에게 지출된 보수총액 대신 연봉이 5억원 이상인 임원 개개인의 보수를 상세하게 공개하도록 한 것으로 이 또한 대표적 경제민주화 법안으로 꼽힌다.

다만, 실효성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다. 등기임원이 아닌 재벌가 총수의 경우는 연봉공개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특정 재벌의 총수들에 대한 봐주기 입법 아니냐는 지적도 받았다.

국회는 이번 6월 국회에서도 불공정거래 관행 등을 제재하는 등 기업들의 거래행태를 개선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경제민주화 법안들을 대거 통과시켰다.

대표적인 게 일감몰아주기 규제법과 프랜차이즈법안이다.

재계의 반발에도 국회는 대표적인 경제민주화 법안인 대기업 총수 일가의 일감몰아주기 등 부당내부 거래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전일 본회의에서 의결했다.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행위 규제와 관련해 규제 조항을 별도로 신설하지 않고 공정거래법 제5장의 규정을 보완해 규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제5장의 명칭도 변경해 경쟁제한성에 대한 입증이 없더라도 규제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총수 일가가 특정 지분율 이상 주식을 소유한 계열사 간 내부거래에 대해서는 다른 사업자의 경쟁 참여를 제한했다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아도 수혜기업과 총수 일가에 각각 관련 매출의 5%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새로운 일감몰아주기의 유형으로 떠오른 통행세 거래도 금지된다.

그러나 규제 대상이 당초보다 축소되면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경제개혁연대는 "규제 대상을 일정 규모 이상 재벌로 국한하고 재벌 계열사가 총수 일가와 거래할 때만 적용하며, 기업의 효율성 증대 등의 경우 예외를 인정한 것은 규제의 사각지대를 발생시킬 것이다"고 비판했다.

국회는 매출 부풀리기를 방지하기 위해 가맹본부가 신규 가맹점 모집시 예상매출액 서면자료를 가맹점주에게 반드시 제공토록 하는 내용의 일명 '프랜차이즈법안'(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의결했다.

산업자본의 은행 보유지분 한도를 현행 9%에서 4%로 축소해 '금산 분리'를 강화한 금융지주회사법과 은행법 개정안도 각각 의결했고,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국세청이 금융정보분석원(FIU)의 자료를 세무조사에 활용할 수 있게 한 'FIU법'(특정 융거래정보 보고 및 이용법 개정안)도 진통 끝에 처리했다.



◇지배구조 관련 법안 처리 진통 예상 = 국회가 6월 국회 마지막 날 경제민주화 법안들을 대거 처리하면서 적잖은 성과를 냈지만, 아직도 법안들이 남아있다.

대기업의 신규 순환출자 금지, 금융ㆍ보험사 보유 주식의 의결권 제한 등의 대기업 지배구조와 관련한 민감한 법안들이 핵심이다.

금융회사에 대한 대주주 적격성 심사 강화 법안과 남양유업 사태로 빚어진 본사와 대리점 간 불공정 행태를 시정하는 소위 '남양유업법', 재벌 총수의 횡령 및 배임에 대한 형량 강화 법안 등도 여전히 처리되지 못한 경제민주화 법안들이다.

국회는 9월 정기국회에서 현재 계류돼 있는 경제민주화 법안들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여야간 이견이 크고, 재계의 반발이 여전히 강해 진통이 예상된다.

우선 대기업의 신규 순환출자 금지 법안의 경우 여야 간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새누리당은 신규 순환출자만 금지하자는 입장인 반면에 민주당은 기존 순환출자까지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의 입장에 대해서는 재계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삼성과 현대차그룹 등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지 못한 재벌들의 경우 수조원의 비용이 들고 적대적 인수ㆍ합병(M&A)의 위협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금융회사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강화하는 법안의 경우도 대주주 자격을 인정하고 박탈하는 형량의 기준을 어느 선으로 할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있다.

금산분리와 대기업의 지배구조와 연결되는 대기업 계열 금융회사의 의결권 제한 등의 법안도 여야 간 시각차가 존재한다.

대기업의 금융계열사가 보유한 비금융계열사 주식의 의결권 행사 제한을 강화하는 소위 '금산분리법안'(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새누리당의 강석훈 의원이 지난달 이미 국회에 대표 발의한 상태다.

이 법안은 박근혜 정부의 공약사항이기도 하고 인수위원회가 마련한 국정과제에도 포함된 대표적 경제민주화 법안이다.

강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대기업 금융계열사들이 비금융계열사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의 합을 현행 15%에서 내년 10%, 2015년 8%, 2016년 6%에 이어 2017년에는 5%까지 단계적으로 낮추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의결권을 제한함으로써 재벌 총수들이 고객의 돈을 이용해 지배력을 유지ㆍ강화하려는 시도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목적이다.

'남양유업법'과 관련해서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이견이 크다. 민주당은 새로운 법안을 만들어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나 새누리당은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보완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여야 간 견해차와는 별개로 경제민주화 입법에 대한 과잉 논란으로 속도조절론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도 앞으로 핵심 경제민주화 법안의 처리를 더욱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

9월 정기국회 일정 중에 10월 재보선 일정이 들어가 있다는 점도 입법화 작업의 속도를 늦추는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예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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