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지, 한국 재벌 후진적 지배구조 비판



(서울=연합인포맥스) 김성진 기자 = 한국 증시가 저평가(디스카운트)를 받는 가장 큰 원인은 재벌의 후진적 지배구조 때문이라고 영국의 경제 주간 이코노미스트가 주장했다.

이코노미스트는 11일자로 발간한 최신호에서 삼성과 현대자동차, SK, 한화 등의 사례를 직접 거론하면서 한국 재벌을 비판했다.

잡지에 따르면 올해 코스피의 주가수익비율(PER) 전망치는 10배를 밑돌아 아시아 주요 국가 중 가장 낮은 편에 속했다.

일본과 인도는 각각 20배와 15배를 소폭 웃돌았고, 필리핀, 대만,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은 15배에 근접한 수준이었다.

이코노미스트가 제시한 9개 국가 중 한국보다 PER 전망치가 낮은 곳은 중국뿐이었다.

이코노미스트는 "북한의 위협이 저평가를 부른다는 기존 주장은 김정일 사망 이후 코스피200 지수가 빠르게 회복하면서 설득력이 떨어졌다"면서 "높은 수출의존도와 기업들의 부채비율도 증시 저평가의 원인이 될 수 있지만, 기업 지배구조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분석했다.

오너 일가 중심으로 경영되는 한국 재벌은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와 세금탈루, 사업기회 유용 등으로 주주들의 이익을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이러면서 잡지는 글로벌 증권사 CLSA가 지난 2010년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를 아시아 꼴찌 수준으로 평가했었다고 소개했다.

CLSA의 조사에서 한국보다 기업 지배구조가 후진적인 아시아 국가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뿐이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국내에서도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 재벌의 일감 몰아주기와 계열사 지원도 소액주주들을 희생시키는 행태라고 지적하고,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 총수들이 범죄에 연루된 사례를 상세히 설명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세금탈루로 유죄 판결을 받고도 지난 2009년 사면을 받고 나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으로 활동했고, 2003년 SK글로벌(현재 SK네트웍스) 분식회계 사건으로 구속됐던 최태원 회장도 사면을 받고 나서 2010년 열린 서울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가로 뽑힌 적이 있다고 잡지는 비판했다.

특히 최 회장은 동생 최재원 부회장과 함께 올해 다시 횡령 혐의로 기소됐으며,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최 회장 형제의 선처를 호소하면서 최 회장을 처벌하면 기업가 정신이 훼손된다는 주장까지 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꼬집었다.

또 현대자동차는 정몽구 회장의 장남 정의선 부회장이 최대 주주로 있는 글로비스에 1조3천억원의 운송 물량을 몰아줘 2007년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당했고, 한화는 지난 3일 김승연 회장의 횡령과 배임 혐의 사실을 공시했다고 잡지는 설명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일들이 거듭 일어나면서 한국에서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오래된 말이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낙후된 기업 지배구조에도 재벌은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으며 이 때문에 오너 일가의 경영을 옹호하는 주장도 있으나, 소액주주들에게도 지배구조에 따른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sjkim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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