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장용욱 기자 = "IB도 기업을 상대하는 '을'에 불과하다, 시장이 어려워지면서 '갑'의 눈치를 더 볼 수밖에 없다"

국내 한 증권사의 ECM(주식자본시장) 담당 임원의 하소연이다.

올해 들어 금융위기 여파에 실물경기까지 침체되면서 IPO(기업공개)로 대표되는 ECM 시장에서 '갑'인 기업과 '을'인 IB의 무게 추는 기업 쪽으로 더욱 쏠리는 모습이다.

ECM 시장은 올해 들어 그야 말고 '죽을 맛'이다.

ECM의 꽃인 IPO 시장의 경우 연합인포맥스의 리그테이블 'IPO 주관순위(화면 8417)'에 따르면 올 상반기 총 공모규모는 2천508억원이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5천228억원)의 절반, 재작년 상반기(3조968억원)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수준이다.

이처럼 시장의 전체 파이가 줄어들면서 주관사인 IB가 벌어들이는 수익은 크게 쪼그라들었다.

실제로 연합인포맥스 리그테이블의 IPO 인수순위(화면 8410)에 따르면 지난 상반기 동안 공모 작업에 참여한 증권사가 받는 총 인수수수료는 81억원이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131억원보다도 61.8%, 재작년 상반기의 647억원에 비해서는 12.5%에 불과했다.

수입은 줄었지만, 기업들의 요구 사항은 더욱 늘어났다.

A 증권사의 한 IPO 관계자는 "발행사의 규모는 예전에 비해 크게 줄고 수수료도 줄었지만 그쪽에서 요구하는 것은 더 많아졌다"며 "공모가에 대한 무리한 요청은 물론 경영 컨설팅과 투자소개 등 다양한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발행사들이 일감이 줄어든 IB들의 절박한 입장을 간파하고 많은 요구를 쏟아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나마 일이 많더라도 실사를 마무리 짓고 상장절차를 마무리하면 다행이다. IPO가 끝나며 IB 관계자들은 그래도 주관수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 곤란한 상황은 기껏 상장 준비에 매진했음에도 발행사가 중도에 일방적으로 IPO 계획을 철회하는 경우다.

B 증권사의 ECM팀 관계자는 "1년 가까이 여러 직원이 달라붙어 상장 준비를 시켜줬지만, 발행사 오너가 어느 날 IPO 계획을 접겠다고 통보했다"며 "대부분 상장 마무리 후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이러면 별다른 보상도 받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C 증권사의 다른 관계자는 "최근 들어 일부는 처음부터 IPO 의지가 별로 없는 상태에서 상장 주관을 의뢰하는 경우도 있다"며 "실사 과정에서 기업 컨설팅 등만 받고는 상장을 무기한 연기하는 방식으로 발을 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처음부터 상장 의지가 약해 보이더라도 실적이 아쉽다 보니, '울며 겨자 먹기'로 기업 쪽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IPO 이외의 시장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국내 로펌에서 기업의 지분투자 등을 주선하는 한 변호사는 "시장이 좋은 때는 투자가 성사되지 않더라도 투입시간에 비례해 상당량의 수수료를 받았다"며 "하지만 요즘에는 기업 측의 요구에 따라 딜이 성사돼야만 일정 수준의 돈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그마저도 요즘에는 의뢰가 들어오는 딜 자체가 별로 없어, 무료 자문이라도 일단 맡는 게 중요한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yu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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