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벤 버냉키 자신도 깜짝 놀랐다. 양적완화 축소를 당장 중단하겠다고 말한 것도 아니고 그저 시그널만 '약간' 줬을 뿐인데도 시장이 이처럼 '야생 돼지' 처럼 날뛸 줄 몰랐다.

다급히 '아직은 아니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여전히 긴장 모드다. 일부 안도감에 뉴욕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보였지만 채권시장은 여전히 살얼음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세 차례에 걸친 양적완화를 포함한 비전통적 통화정책으로 풀어놓은 유동성은 무려 2조8천억달러다. 지금도 여전히 매달 850억달러의 채권과 모기지담보증권(MBS)을 사들이며 돈을 풀고 있다. 하지만 역사상 유례없는 이런 큰 도박이 언제까지고 계속 진행될 수만은 없다. 이미 시장도 이를 알고 있다. 진행 방향과 속도에 변화가 시작됐고, 주식·외환·채권시장 참가자들은 두 다리 뻗고 잠들 수가 없게 됐다.

대공황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고 시장 다루는데 이골이 난 버냉키 자신도 현재 전 세계적으로 투자자들이 얼마나 많은 위험자산을 가졌는지 가늠하기 쉽지 않고, 개인 참가자들조차 10년전 미국의 대통령이 가진 정보력과 맞먹는 시장 식견을 갖고 있다는 점에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양적완화'는 당길수록 긴장이 커지는 고무줄과 같아서 거꾸로 갈 때는 조금만 줄여도 충격이 증폭되고, 위력과 반응속도가 크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극도로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괴물이 돼 있다.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이 과거보다 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더욱 강력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과, 달러화를 통해 전 세계 금융시장이 이미 한 묶음으로 '딴딴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은 버냉키에게도 두려움의 대상이다.

문제는 한국의 경우, 양적완화가 본격 축소되면 자체적으로 충격을 줄일 수단이 많지 않은 점이다. 그동안 외환시장 3종 세트 등 여러 가지로 대응해왔고 실물도 탄탄하다고 하다지만, 글로벌 자금들이 신흥국에 대한 채권투자에서 발을 빼면 외환위기 가능성까지 재차 부각될 수 있다.

다행히 최근까지는 외국인의 원화채 매수가 이어지고 있지만, 안도하기에는 이르다는 평가가 다수다.(연합인포맥스 7월15일 오후 1시5분 송고, 이재헌 기자의 '美출구전략과 원화채-①' 기사 참조)

이달 들어 외국인은 원화 채권에 총 1조9천200억원을 순투자했고, 이런 추세대로라면 두 달 연속 2조원대 이상의 순투자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의 순매수 패턴이 과거와 달라 안정적인 수준으로 평가하기는 이르다는 분석이다. 예컨대 중국 런민은행(人民銀行)의 자금이 만기 연장을 미루고말레이시아 중앙은행의 자금이 일부 빠져나가는 현상은 예의주시해야 한다. 이들 대부분이 장기투자자지만 한번 매도를 시작하면 방향성 투자를 한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버냉키의 "안~돼요, 돼요, 돼요" 발언 시간표가 어떤 일정과 속도로 미세한 변화를 보일지, 국내 채권. 외환 딜러들은 휴가ㆍ장마시즌에도 사무실을 떠날 수가 없다.

(취재본부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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