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창 기자 =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사는 실험용 쥐나 토끼, 원숭이, 비글견을 한 마리 받을 때마다 방대한 자료도 함께 수령한다.

자료에는 이른바 혈통과 관련된 '족보'부터 자라온 환경, 그동안 먹은 음식 등의 모든 내역이 상세하게 적혀 있다.

실험동물은 유전적, 환경적, 미생물학적으로 완벽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신약을 개발해도 해외에서 승인받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유전적으로 동일하지 않으면 실험 표본의 신뢰를 떨어뜨린다. 사료 영양성분이 단 1g만 변해도, 곡물 원산지가 바뀌어도 동물의 체질이 달라지고 바닥에 까는 나무 하나가 오염될 경우 실험동물로 가치가 떨어진다. 무균 시설에 항온, 항습은 필수다.

이처럼 까다로운 일을 하는 곳이 오리엔트바이오[002630]다.



◇ 실패와 좌절…그리고 성공 = 오리엔트바이오는 실험동물을 생산하는 '글로벌 톱10'안에 든다. 세계 최초로 설치류에서 영장류까지 모두 생산에 성공한 기업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국내 민간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장기이식연구센터를 건립하기 위한 착공식을 가지며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3월 결산법인인 오리엔트바이오는 지난 회계연도에 35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계열사 부실로 3년간 적자에서 탈출하며 본연의 실적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오리엔트바이오가 걸어온 길은 험난했다.

오리엔트바이오의 장재진 회장은 연합인포맥스와 인터뷰에서 "죽으려고 했다"는 말을 여러 차례 되풀이했다. 그만큼 실패와 좌절을 반복했다.

장 회장은 27살이던 지난 1988년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고민 끝에 1991년 실험동물 생산업체인 바이오제노믹스를 설립했다. 당시에는 실험동물을 비닐하우스에 톱밥 깔아놓고 키우던 시절이었다.

그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로부터 동물 모체를 받아 대구에서 무균시설을 짓고 생산을 시작했다. 정성껏 길러 대형 제약사에 납품하러 갔으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모체가 유전적으로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큰 실패를 맛본 장 회장은 중국의 한 박사를 통해 영국 실험동물 회사를 소개받아 1992년부터 1997년까지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1997년 정부로부터 신약개발 지원업체로 선정됐으나 이듬해 대출지원을 맡은 금융기관이 부정사건에 휘말려 갑자기 자금공급이 끊기게 됐다. 가평에 최첨단 공장을 건설하다가 갑자기 공사대금을 줄 수 없는 상황이 놓이게 된 것이다.

공장 건설이 지지부진하자 영국 회사도 협력 계약을 파기하겠다고 통보해왔다.

장 회장은 기술신용보증기금을 설득해 자금 일부를 지원받아 꾸역꾸역 공장을 계속 지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세계 최고의 실험용 소동물 생물소재 생산·공급회사인 '찰스 리버(Charles River)' 관계자가 방한해 가평 공장을 둘러보더니 덜컥 인수를 제안한 것이다. 장 회장은 일본 사례를 들어 협력을 제안했고 일사천리로 계약까지 이어졌다. 당시 세계 실험동물 시장의 70%를 점유한 '찰스 리버'와 손을 잡는다는 것은 일본이 정부까지 나서 수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얻어낼 수 있었던 성과다.

당시 '찰스 리버' 관계자는 가평 공장에서 고품질의 실험동물을 생산할 수 있다고 확신한 것이다.

또, 뒤늦게 국가출연연구기관을 설립한 정부가 실험동물을 대학병원과 제약사에 공짜로 제공하겠다고 제안했으나 연구자들은 비싼 가격을 내고서라도 장 회장의 고품질 실험동물을 원했다.

오리엔트바이오는 현재 국내 유일의 국제유전자표준(IGS) 고품질 실험동물 생산하는 업체로 국내외 제약사와 연구소에 제공하고 있다.

장 회장은 '찰스 리버' 등과 마찬가지로 비임상 신약개발지원서비스(CRO) 분야에도 도전하고 있다.

그는 "국가나 대기업이 아무리 많은 자금을 투입해도 실험동물 모체를 손에 얻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며 "삼성도 못한 국가 인프라 사업을 실현했다고 자부한다"고 강조했다.



◇ 투자자 신뢰회복 급선무 = 오리엔트바이오는 지난 회계연도 계열사 부실을 털어내고 영업흑자로 전환했고 재무구조도 나쁘지 않다. 고정적인 수요를 바탕으로 한 사업 안정성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주가는 16일 오전 현재 700원대에 머물고 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2003년 상장사인 오리엔트시계를 인수한 장 회장은 현재의 오리엔트전자와 오리엔트정공도 인수했다. 오리엔트바이오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투자가 필요했고 안정적인 캐시카우(cash cow)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2011년에 인수한 자동차 엔진용 부품 생산업체 오리엔트정공이 속을 썩였다. 장 회장은 인수 당시 현대차 등과 계약이 끊긴 상태였던 것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오리엔트정공은 유동성 부족으로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는 등 오리엔트바이오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장 회장은 본의 아니게 기업 구조조정과 재무개선 전문가가 됐지만, 잦은 M&A로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여기에 2011년 자체 개발 중인 발모제 OND-1이 미국 FDA 임상 승인을 받았다는 발표가 오리엔트바이오 주가를 크게 띄웠으나 그만큼 후유증도 컸다. 사기꾼이라는 말도 나왔다.

장 회장은 "실험동물 생산과 관련없는 업체를 인수한 것은 안정적인 현금창출원이 필요했던 것이고 발모제는 임상 승인을 받은 만큼 중단하지 않고 계속 연구할 것"이라며 "현재 주가를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계열사 부실도 이제 다 정리한 만큼 투자자 신뢰를 회복할 것"이라며 "글로벌 CRO 업체로 거듭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날 인터뷰 도중 해외 바이어가 찾아왔으나 장 회장은 기자와 약속한 일정을 마치고서야 만났다. 당연히 오리엔트바이오는 실험동물을 팔아야 하는 '을'의 위치지만, 고품질 실험동물을 반드시 여기서 사야 하는 바이어가 '을'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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