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버냉키가 성냥을 들고 숲 근처를 기웃거리고 있다. 유동성이라는 비료와 비를 무제한 퍼부어 산림이 무성해졌지만, 지속하면 자생적 건강성을 회복할 수가 없게 된다. 생태계가 복원되려면 엄청나게 웃자란 잔가지와 덤불을 솎아내줘야한다. 하지만 자칫 덤불을 태워 제거하려다 숲 전체의 동식물을 전소시킬 수 있어 여전히 조심스럽다.

눈치 빠른 이들은 언제쯤 버냉키가 성냥을 그을지, 발화가 된다면 숲의 주변부와 중심부 어디까지 태울지, 불길이 자신에게 언제쯤 다다를지를 계산하느라 바쁘다.

지난주까지 버냉키는 두 차례의 의회 증언과 전미경제연구소(NBER) 연설 등에서 양적완화(QE) 축소(tapering)는 경제여건에 따라 결정하고, QE를 줄이더라도 이것이 통화 긴축으로 곧장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일단은 QE 축소와 정책금리 인상 간의 차이를 설명한 것에 대해 시장은 채권금리 상승에 대해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의 의도는 한마디로 말해 과거 94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의 과격한 유동성 회수 형태의 탈출전략을 답습하거나, 2003-2004년 IT 버블 제거 때와 같은 급격한 출구전략의 전철은 밟지 않겠다는 게 골자인 것 같다.

다만, 공짜 점심은 차차 줄여나가겠다는 것, 문제는 이 대목이다. 버냉키와 시장이 각각 생각하는 회수 시점과 규모에 틈이 존재하고, 이 스프레드가 얼마나 좁혀질 것인가가 관건이다.

그의 발언을 곱씹어보면 그는 자신의 재임 중에 금융위기를 성공적으로 탈출했다는 역사적인 평가를 받고 싶어하는 것 같다. 하지만 돈을 살포하는 일은 성공했지만 이를 회수하는 과정은 결코 녹록한 과제가 아니다. 실물경기를 살리는 부분은 중앙은행이 홀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에 성공을 장담하기 더욱 어렵다. 잘못 다뤘다가는 '말짱 도루묵'이 될 수도 있다. 진정한 성공의 완결은 돈을 뿌릴 때보다 회수하는 후반부의 결과가 더욱 중요하다. 버냉키가 고민하는 지점이다.

7월 들어 그의 비둘기파적인 발언으로 채권을 비롯한 각종 자산가격이 춤추고 있다.

서울채권시장도 그의 발언 한 마디 한 마디에 외국인 자금의 유출입과 관련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현재까지는 대다수의 채권딜러들이 '탈출에 대한 우려는 지나친 기우'라는 쪽으로 컨센서스가 형성되고 있지만, 채권금리가 다시 하락하더라도 '데드 캣 바운스'(기술적 반등)이외에는 기대할 것이 없다는 인식 속에 시장은 교착국면에 빠진 양상이다. 일부 증권사가 큰 손실을 입어 인심이 흉흉하고 거래가 지속적으로 부진하지만 해외 쪽 큰 그림의 변화 조짐에 여전히 눈을 뗄 수가 없다.

(취재본부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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