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창 기자 =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를 위해 채권단에 냈던 이행보증금을 상당 부분 돌려받을 수 있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 31부(윤종구 부장판사)는 25일 채권단이 청구대금 2천755억원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2천66억원을 현대그룹에 반환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를 판결했다.

1심이고 일부 승소이기는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이행보증금 관련 다른 소송 사례를 볼 때 현대그룹은 사실상 돈과 어느 정도의 명분을 얻었다.

최종 판결이 나오지 않았으나 각각 대우조선해양과 쌍용건설 인수전에 참여했던 한화그룹과 동국제강이 이행보증금을 받지 못할 상황에 놓인 것과 대조적이다.

그만큼 현대건설 매각 과정이 정당하지 못했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M&A 업계 대부분 관계자는 2010년 말과 2011년 초에 걸친 현대건설 매각 과정이 불공정했다는 점에 공감한다. 시장 거래에 정부와 국회까지 온갖 논리를 앞세워 간섭했다. 마치 한참 운동경기를 하는 중에 룰을 바꾸는 촌극이 빚어진 것이다.

이처럼 현대건설 M&A는 두고두고 나쁜 선례가 됐다.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은 2010년 11월 현대건설 매각을 위한 본입찰에 참여했고 결국 4천억원 이상을 더 써낸 현대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자금력에서 비교되지 않는 양 그룹의 경쟁이 절대 열세였던 현대그룹 승리로 돌아가는 듯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다른 M&A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현대그룹의 자금 출처가 투명하지 못하는 비판이 언론을 통해 나오기 시작했다. 2008년 하반기부터 몰아친 글로벌 금융위기로 차입을 통해 타기업을 인수했던 주체들이 잇달아 어려움에 빠지면서 이러한 주장은 힘을 받았다. 재무적으로 취약한 현대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할 경우 양쪽 모두 무너질 수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정치권까지 나서 국가 경제를 걱정하며 '승자의 저주'를 거론했다.

급기야 채권단은 현대그룹에 자금조달에 대한 상세한 내역을 요구했고 현대그룹은 사전 입찰 규정에 없는 내용이라며 반발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그룹은 현대차그룹이 인수자금 관련해 허위사실을 퍼뜨렸다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힘있는 여론'의 부담을 떠안은 정책금융공사를 포함한 채권단과 사적인 계약 내용을 상세하게 공개하기 어렵다는 현대그룹 사이에 공방이 이어졌다.

결국, 채권단은 현대그룹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박탈하고 현대차그룹과 협상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채권단은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하더라도 현대그룹의 현대상선 경영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중재하겠다는 안까지 내놨다. 현대상선 지분을 가진 현대건설을 현대차그룹이 차지할 경우 그룹 주력 계열사를 뺏길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켜주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당시 스스로 일련의 과정이 정당하지 못했음으로 인정하는 꼴이라는 해석도 일부에서 제기됐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 인수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거나 주식매각 절차를 밟지 못하도록 해달라는 현대그룹의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기각되면서 현대건설은 현대차그룹으로 넘어갔다.

IB 업계 관계자는 "주력 업황 부진과 재무적으로 취약한 현대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할 경우 양측 모두 큰 리스크에 놓일 것이라는 진단은 누구나 했다"며 "그러나 규정대로 입찰을 진행하고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했으면 결과를 인정하고 변경하면 안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두고두고 국내 M&A 역사에 오점으로 남을 것이고 현재 결과로만 판단하면 안된다"며 "현대그룹도 속 시원하게 해명하지 못한 점에 책임이 있는 만큼 재판부가 현명하게 판결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재판부는 이날 자금 성격이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 밝혀진 이상 현대그룹은 추가로 해명할 필요가 있었다며 일부 승소 판결을 한 것이다.

다른 관계자는 "예상했던 결과"라며 "외부 상황이 바뀌었다고 인수 조건을 변경해달라고 한 한화그룹과 동국제강은 이행보증금을 돌려받기 어렵지만, 현대그룹은 채권단이 한때 돌려줄 것을 검토했을 정도로 억울한 측면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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